【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함께 나타난 각종 전염병은 계속 인간을 괴롭혀 왔다. 전쟁으로만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다.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기와 병균과 금속이 역사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분석했다.

전염병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변수다.

병독(病毒)이 전염되는 질환으로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염병(染病), 역질(疫疾)·질역(疾疫)·여역(癘疫)·역려(疫癘)·시역(時疫)·장역(瘴疫)·온역(瘟疫)·악역(惡疫)·독역(毒疫)이라 불렀으며,소 전염병을 우역(牛疫)이라 하고 인간전염병을 여역(癘疫)이라 했다.

원인을 모르면 괴질(怪疾)이라 불렀다. 역(疫)은 널리 유행하는 전염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여(癘)는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결국 오늘날의 처지에서 볼 때 역려란 좋지 않은 전염병이라고 해석되며 악성유행병을 의미하였다. 이와 같은 역질은 예로부터 존재해 왔다.

세계를 바꾼 전염병은 대체 7종류다.

① <유럽 전체> 봉건 제도를 무너뜨린 흑사병(페스트)
650년 유럽의 인구는 1,800만 명 정도였는데, 1340년경에 무려 7,500만 명까지 급증했는데, 지중해에서 스칸디나비아까지 유행병이 발생해 4년도 채 되지 않아 유럽 인구의 1/3이 죽음을 맞았었다.

인구가 감소하자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결국 영주들은 농노들의 지위를 향상시켜 주거나, 농노와 거래를 해야만 했다. 이로써 중세 유럽의 기본을 이루던 장원 제도가 무너지고 봉건 제도도 몰락했다.

② <독일, 프랑스 부근> 낭만주의의 꿈, 결핵
19세기 낭만주의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결핵을 천재성의 상징이라 여겼다. 창백한 피부, 붉은 뺨, 피 묻은 손수건을 예술적 열정의 표시라 생각했다. 1800년대 초까지 결핵으로 유럽 인구의 1/4이 죽었다. 원인을 잘 알지 못하던 시절의 일본에서는 상사병이라고 불렀다. 1882년 코흐에 의해 결핵균이 알려지자 결핵은 낭만의 상징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균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결핵은 여전히 인간이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은 결핵 후진국이다.

③ 제1차 세계 대전보다 무서운 스페인 독감

20세기에 가장 크게 유행한 것은 스페인 독감이다. 감기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환자의 피부에서 산소가 빠져나가면서 보랏빛으로 변해 죽어가는 병이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사람이 1,500만 명 정도였는데 비해,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서둘러 매듭지어졌고,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독감 예방 접종이 시작되었고, 독감은 그 어떤 무기보다도 무섭게 느껴졌다.

④ <영국> 도시를 청소하는 콜레라
1817년, 인도에 새로운 병이 유행했다. 몇 시간 이내에 건강한 사람을 시체로 만들만큼 격렬한 설사와 구토를 유발했지. 사람들은 페스트가 무서운 병이라고 하지만, 역사상 페스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콜레라다.

가난과 비위생적인 환경이 만들어낸 병이다. 이 때문에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공중 위생법과 공공 의료법이 만들어졌다. 아직도 콜레라의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⑤ <라틴아메리카> 아즈텍 문명을 정복한 천연두
1519년 코르테즈는 550명의 부하를 끌고 아즈텍 제국에 침입했다. 이때, 코르테즈는 천연두에 걸려 죽은 군인의 시체를 이용해 생물학전을 펼쳤다.

단 한 번도 천연두를 경험해 보지 않아 면역성이 없던 아즈텍 인들은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

WHO(세계 보건 기구)는 천연두 균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했는데, 미국과 러시아 두 곳의 냉장고에 만약을 위해 보관 중이다.

⑥ <카리브 해 연안> 라틴아메리카를 독립시킨 황열병

19세기 초, 아프리카로부터 흑인 노예를 강제 이주시켜 설탕 농장을 하던 유럽인들이 치명적인 전염병인 황열병에 걸렸다.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이 병은 열이 나고, 심하면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두통이 있으며, 춥고, 격한 구토와 출혈이 있어. 결국 위장 안에서 검게 변한 피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오면서 피부가 노랗게 변하다가 죽는다.

아이티에서 독립을 위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진압하는 군인들이 황열병에 걸리면서 아이티는 독립을 얻었다.

⑦ <홍콩>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사스(SARS, 조류 독감)

옛날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사스는 홍콩에서만 유행하다가 끝났을지도 모를 질병이었다.

하지만, 요즘 전염병은 교통의 발달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움직인다.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고 중국까지 가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면, 사스는 홍콩의 비행기를 타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전 세계 30개국으로 퍼져나갔다.

이 외에도 한센병, 매독, AIDS, 조류인플루엔자 (avian influenza) 등이 인간을 괴롭혔다. 그런데 모든 병의 공통점이 폐병이라는 사실이다. 깨끗한 청폐야말로 가장 건강한 몸의 상징이다.

왕조시대에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에 따라 임금이 정치를 잘 못하면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고 해석했기 때문에 전염병이 돌면 군주와 재상들은 전전긍긍하기 마련이었다.

이럴 때 쉽게 사용하는 해결책이 희생양을 만들어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백련교는 송ㆍ원ㆍ명(宋元明)나라 때 성행했던 미륵불을 신봉하는 종파였다. 미래불인 미륵불은 일종의 메시아사상으로 현실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의 혁명사상의 일종이었으므로 중국에서 여러 차례 큰 탄압을 받았다.

홍언모는 8월초에 난주서 몇 사람을 잡아서 수사했는데 샘물로 물증을 삼아서 여당(餘黨)을 체포하는 중이라고 보고했다. 이때 유행했던 콜레라는 1817년 인도의 캘커타에서 발생해 1823년까지 아시아 전역과 아프리카까지 유행했다.

실제로 조선에서는 이듬해인 순조 22년(1822) 4월까지 계속되어 도성 안팎에서 죽은 사람들이 속출했다.

이 사건 발생 90여년 후인 1910~11년에도 만주 전역에 페스트가 만연했다.

당시 서구에서는 페스트균을 쥐가 전파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케임브리지 출신의 중국인 의학자 오연덕(吳連德ㆍ우롄더)은 만주 전역에 창궐하던 페스트가 쥐에 의해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기침, 재채기, 대화할 때 공기 속에 흩어져 있는 병원체로 감염되는 폐 페스트라고 주장했다.

그 매개체도 쥐나 쥐벼룩이 아니라 산속 바위틈이나 평지에 굴을 파고 사는 마르모트였다. 마르모트 가죽이 피혁시장에서 인기를 끌자 너도나도 마르모트 사냥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악성 페스트가 사냥꾼을 통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출신 페스트 전문가 매시니는 “페스트는 공기를 통해 전염되지 않는다”면서 폐를 통해 전염된다는 오연덕의 견해를 반박하고, 하얼빈에 갔다가 감염되어 러시아 철도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1911년 정월부터 시신을 중히 여기는 중국인의 관습을 버리고 오연덕의 견해대로 시신을 소각하면서 페스트가 잡혔다는 것이다. -김명호 교수의 신문 연재 ‘김명호의 중국근현대’에 나오는 이야기.

오연덕은 훗날 일본 군부가 손을 내밀자 거절하고 말레이시아의 시골 의사로 돌아가 생애를 마쳤다.

메르스 사망자가 잇따라 괴담이 실제 상황이 되었다. 감염환자가 버젓이 중국으로 출국해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을 비난할 정도니 세월호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무능이 부끄럽다.

옛 선조들은 이런 재난이 발생하면 해괴제(解怪祭)를 지내 하늘의 노여움을 풀려고 했는데, 우리도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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