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

아무 것에도 걸림없이 노니는 것, 서로 하나로 노니는 것이 소요유다. 구속이 없는 절대의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소요유라 한다. 왕선겸은 壯者集解(장자집해) 에서 “사물에 얽매인 현실을 초월하여 대 자연의 무궁한 품속에서 자유로이 노님”이라 말했다.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저마다 제 구실 하도록 내버려 두라....
스스로 있지만 스스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다.
자연은 스스로 비롯된 것, 원래부터 거기 있는 것이다.
소요유는 자유고 자연이다.
소요유는 완전한 자유, 신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다. 無己, 無功, 無名이다.

명의 육방호(陸方壺)가 장자의 시를 인용하여 “옷깃 천 길 벼랑 위에 휘날리고 발을 만리 강물에 씻는다. 대장부 이런 기개가 없이 어찌하랴. 바다 끝없이 넓으니 물고기 뛰놀아도 아랑곳없고, 하늘 뎅그렁 비었으니 새나는 대로 맡겨 둔다. 대장부 이런 도량이 없이 어쩔랴.”라고 읊은 경지가 소요유다.

장자의 시대는 전국시대다. 전쟁, 살육, 음모, 권모술수가 소용돌이치는 불안과 절망의 시대였다. 장자는 세상의 유혹과 권력의 단맛을 밀어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초(楚)의 위왕(威王)이 장주의 어짊을 듣고 사자(使者)에게 후한 금품을 보내 재상이 돼달라고 청한 일이 있었다. 장주는 웃으면서 사자에게 이렇게 전한다.

“천금(千金)은 엄청난 이득이요, 경상(卿相)은 존엄한 지위다. 그러나 그대는 아직도 교제(交際)의 제삿 소(際牛)를 보지 못하였는가? 몇 년을 잘 먹여 기른 다음에는 아름다운 비단 옷을 입혀 태묘(太廟)로 끌려가게 마련이다.

이 때야 비로소 한 마리 더러운 돼지가 되고 싶은들 될 뻔이나 하겠는가?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나를 더럽히지 말라. 내 차라리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노닐며 스스로 유쾌하게 지낼지언정 나라 다스리는 사람에게 얽매이지는 않겠소. 죽는 라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뜻을 편안케 지켜나가겠소.”

가난한 그가 떨어진 신발에 누덕누덕한 옷을 입고 위왕을 찾아갔을 때, ‘선생은 어찌하여 그다지도 지쳐 보입니까?“하고 동정하니까, ’지친 게 아니고 가난한 겁니다.”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외편 산목편(山木篇)에 보인다.

잡편의 열어구편(烈禦寇篇)에는 장자 앞에서 자신의 영달을 뽐내는 동향인(同鄕人)에게 “세상의 부귀는 권력자의 엉덩이에 난 치질을 빨아내는 짓과 같은 정신의 굴욕으로 얻게 마련이다.‘라고 일갈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인은 이론보다 생명 그 자체를 좋아한다.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다. 생명없는 질서보다는 생명있는 무질서를 사랑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법칙이 아니라 산다는 문제다. 장자의 철학은 이와 같은 중국인의 사고를 가장 잘 나타낸다.

장자의 철학은 생명철학이다. 생명있는 것을 그대로 생명 있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는 생명을 해치는 것을 가장 미워했다. 장자는 인간이 만일 생명의 안전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면, “살아있는 혼돈(混沌)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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