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누란지위(累卵之危)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다.

“한 번 시장이 개방되면 계속 수입산을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산 수급 문제가 없어도 난황이나 난백 등 액란 시장은 일정 부분 빼앗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치킨전>저자 농업사회학자 정은정씨

여러 개의 알(달걀)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위태한 형편이라는 뜻이다.
병법이나 투자 지침서에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위기 뒤에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

AI가 초래한 위기는 심각하다.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따른 달걀 수급 대란으로 정부가 수입을 늘리기로 했지만 대기업만 유리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I 파동이 진정된 뒤, 국내 농가는 수입 달걀과 경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 계열화 되는 방향으로 재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위기라는 게 ㅡ그렇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현실은 공룡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위기를 틈타 경제 질서를 공룡에게 유리하게 재편한다.

AI로 2000만 마리가 넘는 닭·오리가 살처분되고 달걀 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12월 19일 산란계 종계와 달걀 수입 등 수급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유통업계에 항공운송비 지원, 관세(27%) 제외, 검사기간 단축 등을 통해 달걀 수입을 확대키로 했다.

미국·캐나다·스페인·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수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달걀 수입이 늘면 소비자들이 직접 사먹는 일반 생달걀보다 가공식품 등에 쓰이는 원료용 달걀 시장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유통기한 문제 탓에 비행기로 실어와야 하는 생달걀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

관세청 무역통계를 보면 H5N8형 AI가 창궐했던 2014년 6~9월 미국산 생달걀 4694㎏이 수입됐지만 대란 30알 기준 4만원으로 가격이 지나치게 비쌌다.

정부도 생달걀 수입이 늘어나기 어렵다는 건 안다.

수입 생달걀 소비자가가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항공운송비 지원도 지침은 없다. 민간에서 하지 않으면 못한다.

진짜 문제는 과자·빵 등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원료용 달걀이다.

국내 산란계 농가는 생달걀과 함께 가공용 달걀 공급도 같이 하고 있다. 중요한 한 축인 가공용 달걀 수입이 늘면 농가 수익구조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들 이야기는 “AI가 터지기 전까지 수급 조절 실패로 달걀 값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고 한다. 사태가 한 달도 안돼 달걀이 부족하니 수입하자고 한다.이리되든 저리되든 독립농가가 버티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껍질이 없는 알이나 노른자, 흰자 형태로 분리된 달걀(액란)로 이미 수입되고 있다. 올해 들어 이탈리아, 중국, 미국 등에서 ‘새의 알(껍질이 붙지 않은 것)’ ‘알의 노른자위(신선한 것, 건조한 것, 물에 삶았거나 찐 것, 냉동한 것 등)’가 총 320만t, 95만3000달러어치 수입됐다. 수입단가는 대란 30알 기준 약 5350원으로, 현재 8000원대로 치솟은 국산보다 싸다.

당장 공급난을 이유로 수입시장을 확대하면 돌이키기 쉽잖다는 점이 문제다.

향후 AI 파동이 지나고 달걀 공급량이 회복되더라도 국산 달걀은 외국산과 경쟁을 이어가야 할 공산이 크다.
수입 확대가 달걀 농장의 대기업 계열화를 부추길 수 있다.

외국산 때문에 국산 농가가 경영난에 봉착하면 대기업이 영역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달걀 생산은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됐지만 하림 등 이미 유통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누란지위(累卵之危)

옛날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에는 세 치 혀 하나를 밑천삼아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능변으로 호감을 사서 출세하려는 이른바 세객(說客)들이 흔해 빠졌다. 그중에는 세상을 경영할 만한 지혜의 소유자도 물론 있었지만, 대개는 톡톡 튀는 말재간뿐인 자들로 이를테면 사회의 필요악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위(衛)나라의 범수(范脽) 또한 그런 세객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가난하고 미천한 집 출신이라서 좀체 이름을 날릴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위나라 대신 수고(須賈)가 중대 사명을 띤 외교 사절로 제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마침내 범수가 그 수행원에 발탁되었다. 범수로서는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모처럼 얻었다고 기뻐했다.

제나라로 간 수고는 양왕(襄王)을 만나 외교를 펼쳤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 대신 범수가 현란한 말솜씨로 탁월한 언변을 쏟아 놓아 제나라 왕과 대신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일에 기분이 상한 수고는 귀국하자마자 왕에게 말했다.

“범수란 놈은 알고 보니 제나라와 내통한 첩자였습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모처럼 잡은 기회에 능력을 발휘하고자 적극적인 웅변을 펼쳤던 것이 도리어 첩자 누명의 빌미가 되었으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범수에게 갖은 고문을 가하여 초죽음으로 만들고는 거적에 둘둘 말아 변소에 버렸다. 그리고는 취객들로 하여금 그 몸에다 오줌 세례를 퍼붓게 했다.

‘아하, 세상에 어찌 이런 경우가 있으랴!’
범수는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한탄했으나, 한편으로 동물적인 생존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어디 두고 보자. 이 정도로 죽어 나간다면 내가 어찌 제대로 된 세객이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범수는 간수를 불러 자기 목숨을 구해 주면 반드시 뒤에 후한 사례를 하겠다고 설득했다. 뛰어난 말솜씨에 홀딱 넘어간 간수는 거적 속의 죄인이 죽었으니 갖다 버려야 되겠다고 왕에게 말해 허락을 받았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범수는 정안평(鄭安平)이란 사람한테 찾아가 그의 도움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고, 이름도 장록(張祿)이란 가명을 썼다. 그 후 진(秦)나라에서 왕계(王稽)란 사신이 위나라에 찾아왔는데, 정안평은 객사에 있는 왕계를 은밀히 찾아가 범수를 추천했다.

“우리 마을에 장록 선생이란 분이 계신데, 천하를 움직일 만한 재주가 있습니다. 다만, 몸을 드러내 놓고 활동할 수 없는 처지이므로, 대인께서 은밀히 진나라로 데려가시면 큰일을 해 낼 것으로 믿습니다. 한번 만나 보심이 어떠할는지요.”

다음날 밤 왕계는 범수의 청산유수 같은 달변과 식견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 귀국할 때 범수를 하인으로 변장시켜 숨겨 데리고 갔다. 왕계는 어전에 나아가 말했다.

“전하, 신이 이번에 위나라에서 탁월한 세객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장록이라고 하는데, 그는 우리 진나라의 형편이 마치 ‘달걀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고 하면서, 자기를 발탁하면 이 나라와 백성이 두루 평안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진나라 왕은 소양왕(昭襄王)이었다. 그는 한낱 세객 주제에 자기 나라 사정이 어떻다는 둥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기왕 데려온 사람이고 세상의 눈이 있으므로 일단 낮은 직책을 주어 능력을 시험하기로 했다.

호된 고난을 겪은 범수가 그 필생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재능을 다하여 왕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고, 나중에는 ‘먼 나라와 화친하면서 가까운 나라부터 먹어 들어간다 遠交近攻策(원교근공책)’는 외교 정책으로 진나라의 국운을 융성하게 만들었다.

수가는 어떻게 됐을까?
훗날 진나라에 사신으로 온 수가는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범수가 진나라 재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범수는 이름도 장록이라고 바꿔 부르고 있었으니까. 범수는 몰래 사신 수가의 숙소로 찾아든다.

깜짝 놀란 수가가 안부를 묻자 범수는 날품팔이로 연명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에 안됐다고 여긴 수가가 음식을 대접하고 자신이 가지고 온 고급 솜옷을 준다.

결과적으로는 이 솜옷이 그의 목숨을 구하는데, 이튿날 재상 장록을 만나러 간 수가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 약소국 위나라 사신이 강대국 진나라 재상 앞에서 기를 펼 수 없음은 당연한데 게다가 예전 자신이 죽이려고 하던 인물이니! 그러나 범수는 수가를 준엄히 꾸짖고는 그가 마지막에 베푼 솜옷을 봐서 목숨을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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