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한국은 리스트 공화국이다. 우리가 아는 리스트는 음악가 리스트, 그의 사촌동생으로 독일 형법학자로 형법의 마그나 카르타적인 기능을 강조하고 죄형법정주의를 정상화한 것으로도 유명한 리스트, 물품이나 사람의 이름 따위를 일정한 순서로 적어 놓은 것. ‘목록’, ‘명단을 뜻하는 리스트 정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폴란드의 어느 마을. 시류에 맞춰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자 쉰들러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한다. 그는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찌 당원이 되고 독일군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냉혹한 기회주의자였던 쉰들러는 유태인 회계사인 스턴과 친분을 맺으면서 냉혹한 유태인 학살에 대한 양심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게 될 유태인들을 구해내기로 결심한다.

그는 독일군 장교에게 빼내는 사람 숫자대로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유태인들을 구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스턴과 함께 구해낼 유태인들의 명단,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1100명의 유태인을 구해낸다.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고 이를 영화화한 것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다.

리스트는 예전에도 엄청 많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최순영 리스트’, ‘이형자 리스트’ 등 당시 정부 들어 유포된 리스트는 알려진 것만 33가지였다. 2차 3차 리스트에다 출처와 유통처에서 변형한 아류와 변종까지 합하면 족히 100여 가지 조합까지 떠돌았다.

리스트는 비리 혐의 등으로 구속된 피의자들의 로비활동과 관련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청구 장수홍 리스트’, ‘김선홍 리스트’, ‘경성 리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또 수사기관에서 적발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김영은(고액과외사건으로 구속) 리스트’와 ‘원용수(병무비리로 구속) 리스트’, ‘정계개편과 관련된 한나라당 탈당 예상자 리스트’, ‘5공 신당창당 리스트’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전 농협 회장인 “원철희 리스트”도 있었다.

'김상진 리스트','삼성 떡값 리스트','제이유 리스트','김우중 리스트', '진승현 리스트','조동만 리스트'등이 등장했지만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사법처리로 이어진 '신성해운 리스트'처럼 수사 성과를 낸 리스트는 극히 드물다. 떡값리스트, 성상납 리스트, 뇌물리스트,블랙리스트 등의 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국회의 의원회관이라고 보면 된다.

그 곳은 의원과 그 보좌진이 상주하고, 이들은 각종 정치정보를 모으고 생산한다. 여기에 이들의 정보를 필요로 하는 기자들이 드나들며 서로의 정보를 확인한다.

또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각 기관 정보요원과 경제부처 정보담당자까지 모여 믿을만한 상대방과 정보를 교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정보는 정보지 형태로 만들어지거나 의원 및 정당에 문서로 보고되기도 하는 데 이 과정에서 리스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른바 ‘찌라시’다‘. 이런 정보는 증권가로 흘러 들어가 증권정보지에 실려 다시 정치권으로 역류하기도 한다. 또 정치적 경쟁자나 기업을 ‘죽일’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기업의 구조조정 시기나 정계개편 시기에 불만을 품은 일부의 음해공작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시중 루머 수준의 리스트가 정부 관계자에게 보고됐다가 그 내용이 다시 시중에 흘러 들어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스트의 폐해는 엄청나다.

여야가 상대방의 특정인을 음해할 목적으로 리스트를 돌리는 ‘리스트 정치’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리 없다’는 속담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힘은 세졌지만 신뢰는 잃어버린 경찰이나 검찰권도 한몫 거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리스트 실체 확인보다 명예훼손부터 걱정하는 친절한 경찰의 행동에 대해 벌써 우려가 많다. ‘똥 묻은 개 엉덩이 닦아주는 견찰’이란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요사이 떠도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용산 사태, 삼성X파일, BBK, 쌀 직불금 수령 때처럼 열심히 물 타기가 시도 된다면 안 된다.
지금은 청와대가 의심받고 있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도입부는 사당패가 판을 벌인 대가로 그 고을 수령에게 하룻밤 노리개로 바쳐진 공길(이준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공길은 남색의 희생물이었지만 1927년 출간된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나오는 ‘여사당 자탄가’를 보면 비슷한 일은 주로 여사당에게 일어났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그 결탁은 때로 공공연히 꽃을 피운다.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는 여배우와 창부의 구별이 쉽지 않을 지경이었던 시대의 타락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권력과 돈이 갖고 있는 특혜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른바 특권층이 연예인에 대한 유혹의 손길을 멈추지 않는 한, 법이나 제도로 막을 수 없는 추악한 거래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자가 일찍이 말한 ‘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함이 없다(知足不辱 知止不殆)’는 유혹하는 쪽이나, 유혹에 끌리는 쪽이나 귀담아들어야 할 경구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가 이를 경계해 일갈했다.
"공짜로 받은 선물만큼 비싼 것은 없다." 선물과 뇌물을 판별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그것을 받았을 때.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고 신문에 났을 때 문제가 없을 거 같으면 선물이요,신문에 났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을 거 같으면 뇌물이다.

합리적 룰 보다 반칙 횡행하는 한국 사회.
두 사건은 합리적인 룰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동안 우리는 ‘잘 살아보겠다’고 노력은 했는데 어떻게 잘 사는지에 대한 고민은 결여돼 있었다.

미국식 청교도 자본주의가 아닌 천민자본주의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잘 살고, 잘 먹자는 주의다. ‘정직’이라는 덕목이 강조되지 않다 보니 정치인들의 공약과 같은 사회적 약속도 깨지는 것이 공약이다. 정치계와 연예계는 ‘비합리적인 룰’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의 눈에 들어야 성공할 수 있는 비합리적이고 후진적인 룰이 지배하고 있다. 아직도 사병이 판치고 개인 조직과 가신이 판치는 곳이 정치권과 연예계다. 때문에 정치ㆍ연예 스캔들이 반복되고 있다.

합리적인 룰이 지배하지 않으면 언제든 추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칙을 지키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이 부패 스캔들을 낳고 있다. 뇌물이든 성상납이든 정도(正道)가 아니라 편법을 추구하는 게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절차에 대한 사회적 신뢰 부족’이 반복적인 부패의 원인이다.
정당한 절차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돈로비 몸로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계속된다.

한국사회 부패의 가장 큰 특징은 생선이 머리서부터 썩어 들어가 듯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없는 권력과 명예 돈을 가진 것들이 부패한 ‘상탁하청(上濁下淸)’에 있다. 지도층의 ‘모럴 해저드’는 이미 말기암과 같은 상태다.

김지하의 오적시대를 능가한다. 신자유주의와 더욱 강화된 ‘승자독식’ 논리도 한 몫하고 있다.
스스로의 부패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모습이다.

이기기만 하면 다 된다는 식의 의식을 뿌리 뽑아야 한다.

반부패에 대한 자원 배분이 경제위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어 안타깝다. 경제불황으로 시나브로 줄어들던 부정부패가 여건이 나빠진 틈을 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반부패를 주장하는 것과 동시에 투명성과 책임성 등 긍정적 가치를 세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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