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 -쇼펜하우어

고슴도치 딜레마는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책 '소품과 단편집(Parerga und Paralipomena)'에 등장한 것으로, 인간의 애착 형성의 어려움을 빗댄 표현이다.

고슴도치들이 추운 날씨에 온기를 나누려고 모여들었지만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상처입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딜레마를 말한다.

고슴도치들이 추운 날씨에 온기를 나누려고 모여들었지만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상처입지 않으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딜레마를 통해 인간의 애착 형성의 어려움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고슴도치 딜레마를 자신의 저서 '집단 심리학과 자아의 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에서 인용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결혼, 우정, 부모-자식 관계 등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는 “혐오(aversion)와 적대(hostility)의 감정의 잔여물”이 존재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은 억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 일화를 인용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감정이 발생하지 않는 관계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밖에 없다고 보았으며, 그 이유는 나르시시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이트의 많은 저서가 친밀함(intimacy)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어느 정도까지가 적절한 수준의 친밀함인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친밀함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인간이 어떻게 친밀함을 갈구함과 동시에 거부하는지 탐구했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는 대인관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문제의식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평범한 어머니가 자신의 어린 딸, 혹은 아들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는 18가지의 이유를 제시했다(예: 아기가 임신 기간이나 출산 당시에 어머니의 생명을 위협했다.

아기가 집에서 어머니에게는 까다롭고 달래기 어렵게 굴더니 바깥에 나가 낯선 타인에게는 미소를 지으며 친근한 행동을 한다 등). 위니캇은 자신의 아기에 대한 사랑마저도 때때로 양가적(ambivalent)일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는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은 어머니들에 비해 아기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적다고 주장했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지만 그들은 상대의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홀로 떨어져 있으면 다시 추위를 느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만 이내 또 다시 가시에 찔려 떨어진다.

그들은 추위와 아픔 사이를 오가다가 마침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몇 번의 사행착오 끝에 서로를 찌르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찾아 유지한다.
이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우는 교훈이 된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적절하고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좋은 인간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너무 가까이도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고 했다.

차와 차 사이의 차간거리처럼 인간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인사나 용인술에서도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은 통한다. 너무 가까이 하면 소홀히 대하기 어렵고, 너무 멀리하면 불러 쓰기 어렵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측근을 대해야 탈이 없다.

오늘날 비리가 횡행하는 것은 거리두기가 실패한 경우다.

권력이란 너무 가까우면 타죽고 너무 멀면 얼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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