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회의가 아니라 고문이다. 상급자나 갑들이 알량한 지식을 과시하며 일방적 지시만을 하고, 부하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의 피로도만 잔뜩 올려놓는 상사들이 적지 않다.

성당 봉사직들도 마찬가지다. 회의하면 뭐하나 시행되는 것도 없고 어차피 윗 사람 뜻대로 할 텐데 말이다. 주제는 저만치 놔두고 자기 학력이나 아는 것을 회의 때마다 드러내는 속물 상사일수록 다른 사람 말은 듣지 않는다.

누가 의견을 제시하면 도리어 자기 말을 가로챈다며 예절에 관해 한 늘어놓기 마련이다.그리고 가이드 라인부터 친다. 회의르르 해놓고 결론도 안내지만 결론이 난 일도 시행하지 않는다.

또 별로 우습지도 않거나, 한물 간 넌센스 퀴즈 같은 것이나 이상한 유머를 들이대고 웃음을 강요한다. 이럴 때는 그게 매우 우습다며 배꼽 잡고 뒹구는 흉내를 내는 아첨꾼이 꼭 있다. 그런 직원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자고 지가 이야기 해놓고 저는 성당에서 정치를 하고 있다. 웃기는 양아치들이다. 회의는 그렇게 필요이상의 시간을 잡아먹으며 흘러가고, 게다가 자주 열린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회사 일과 회의 때문에 항시 바쁘다며 엄살이고, 자기 아니면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것처럼 과장하고 다닌다. 그런 회의 백날 춤춰 봐야 조직은 멍들고, 앞길은 험하다. 그러다 보니 회의의 본뜻은 희미해진 대신 비효율적인 것의 대명사처럼 되고 말았다.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Der Kongress tanzt viel, aber er geht nicht weiter)."- 샤를 조제프 라모랄 리뉴(Charles-Joseph, 7th Prince of Ligne, 1735.5.23. 브뤼셀 - 1814. 12.13. 비인)

1814년 5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추방된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오스트리아.영국.러시아.프로이센 등은 유럽 질서 재편작업에 착수한다. 프랑스가 포기한 영토 등을 나눠먹기 위한 회의를 그해 9월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다. 90개 왕국과 53개 공국(公國)이 회의에 참가한다.

장소는 쇤브룬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는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합스부르크가의 별궁이다.

1762년 6세의 신동 모차르트가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를 한 뒤 어린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다가가 "너를 아내로 삼겠다"고 했다던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그런 유서 깊은 곳에 각국 대표단이 모였지만 회의다운 회의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다자(多者) 회의인데도 참가국 전체가 모인 경우는 10개월 뒤 빈 회의가 폐회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궁전은 시끌벅적했다.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메테르니히가 연일 성대한 무도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외교관들은 왈츠의 향연에 푹 빠졌다.

오죽했으면 "하루의 4분의 3을 왈츠와 댄스로 보냈다"는 말이 나왔을까. 미국 3, 4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최고의 와인"이라고 극찬한 프랑스 그라브산(産) 샤토 오브리옹이 명성을 더욱 날리게 된 것도 이때의 무도회 덕분이다. 10개월간 연인원 10만여 명의 혀가 그 맛을 봤기 때문이다.

당시의 광경을 본 오스트리아 장군 폰 리뉴는 "회의는 춤춘다(Der Kongress tanzt)"고 했다. 1815년 2월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 전승국을 긴장시키기 전까진 회의에 진전이 없었음을 꼬집은 명언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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