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1)고영태 체포·우병우 기각,
(2)대통령도 이겼다? "강한 실세들 구속됐는데 여전히 밖에 있어"

'국정농단' 핵심 혐의 '직권남용', 지난해 12명 중 9명 무죄

검찰은 고영태를 체포, 자택 압수수색까지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우병우 전 청와대민정수석은 또 한 번 구속 영장이 기각돼 화제다.

검찰 측은 "증거 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음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아 우병우의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또 다시 구속에서 벗어난 우병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며 앞서 지난달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김경진 의원이 "우병우 전 수석이 검찰로부터 수사정보를 취득해 누설했느냐하는 부분들이 관심이 간다"라며 전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당시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 구속 당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어 과거보다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김어준 역시 "대통령을 비롯 삼성 부회장, 비서실장 등 가장 강한 실세들이 다 구속됐는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여전히 밖에 있으니 대단하다"라고 전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분노를 드러냈다.

정청래 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분노합니다. 우병우 구속영장 기각은 왜?>청와대 민정수석은 수시로 검찰과 업무협조하는 관계. 우병우를 잡으려면 검찰 내부를 철저하게 수사해야하는데 여러모로 곤란했을듯. 법원의 책임이라기보다 검찰 수사를 문제삼아야하지않을까? 어쩔수없는 검찰. 에효"라는 글을 게재했다.

권순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혐의 내용에 관하여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고,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에 비추어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음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아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직무유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불출석), 특별감찰관법 위반 혐의를 받던 우병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권 판사는 증거인멸 또는 도망의 염려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며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형법 123조 ‘직권남용죄’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거나 받게 될 38명 중 15명(기소를 앞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포함)에게 적용됐다. 이중 12명이 구속됐다.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라는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단죄하는 ‘직권남용죄’는 ‘국정농단’ 행위를 처벌하는 주된 법적 잣대인 셈이다.

과연 이들은 “이게 나라냐”는 국민들의 성토에 걸맞은 처벌을 받게 될까

구속부터 피해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동안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사법처리 결과는 이같은 의문에 물음표를 더한다.
무죄 선고율이 높은 대표적 범죄기 때문이다.

직권남용죄의 법정 최고형은 징역 5년으로 뇌물수수죄와 같지만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한 해 동안 대법원에서 확정된 직권남용 혐의에 관한 판결 8건을 분석한 결과, 재판을 받은 12명의 피고인 중 9명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1명은 벌금형을 받았고 2명만 실형 선고를 받았다. 실형 선고를 받은 두 명은 뇌물수수 혐의 등이 겹쳐져 가중처벌을 받은 경우였고 그마저도 형량은 징역 4개월과 징역 6개월에 그쳤다. 같은 기간 서울중앙지법의 직권남용혐의에 대한 재판 6건의 선고 결과도 3건은 무죄, 2건은 집행유예였고 실형은 1건 뿐이었다.

직권남용죄의 무죄 비율이 높은 핵심적인 이유로 전문가들은‘입증 곤란’과 ‘경계의 모호함’을 꼽는다. 형법은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요건을“① 일반적 직무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②직권의 행사를 가탁하여(권한 행사라는 구실로) 실질적ㆍ구체적으로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한다”고 해석한다. 행위에 결과에 과한 요건만 보면 '공무원이 저지른 강요죄'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원인이 되는 행위가 폭행이나 협박이어야 하는 강요죄와 달리 직권남용은 주로 조용한 지시나 암묵적인 권유로 이뤄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정농단 과정에서도 증거와 문서들이 조직적으로 인멸된 정황이 보인다. 직권남용은 권력적 행위의 속성상 입증이 어렵고, 조직적 은폐와 증거인멸이 이루어지기 쉽다.

손동권 건국대 법대 교수
“피고 측에서는 ‘사익이 아닌 국가 이익을 위해서 한 일’이라거나 ‘정부 차원의 정책적 결정에 따른 일’이라고 방어하기 좋다.

재판에서 늘 불리한 건 정황 증거 만으로 법관에게 유죄라는 확신을 줘야 하는 검찰 쪽이다”
직권남용의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지시했더라도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무죄가 선고된다.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 김모(57) 국장은 농협 등이 부도위기에 처한 경남기업에 300억을 대출해주도록 해줬다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 심담)는 “금융시장의 안정 도모”라는 목적에서 한 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을 남용할 만한 동기가 있어 보여도 실제로 남용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으면 역시 무죄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대기업 간부들에게 전화를 돌려 자신의 내연녀 신정아씨가 일하던 성곡미술관에 후원금을 내게 만들었던 일도 직권남용의 결과가 아닌 기업의 정상적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평가됐다. 대법원은 2009년 1월 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의 결과가 이렇다 보니 검찰은 아예 기소를 꺼리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된 970건 중 33건만 기소하고 923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기소율 3.4%는 전체 범죄 평균 기소율 38.145%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치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

“직권남용은 의율하기 어렵고 법원에서 무죄가 많이 나와 검사들이 직권남용으로는 기소를 안 하거나 다른 죄명으로 바꾸려 한다. 기소를 통해 선례를 많이 남겨 ‘이 정도는 남용’이라는 기준이 서야 한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무더기 기소로 시작된 ‘직권남용’ 재판의 결과는 향후 공무원 범죄에 대한 사법처리 관행이 돼 공무원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범죄사실 자체가 정치권력의 행사에 관한 것이 많다 보니 법원이 눈치를 보거나 시류에 편승하는 경우가 있었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재판은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조계의 인식을 새로이 하고 공직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직권남용과 정상적 직무 집행의 경계가 애매한 경우가 많아 엄격히 처벌하면 공무원들이 정당한 권한 행사도 주저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결국 관료제도 시험권력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이번 대통령 후보들로서는 기대가 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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