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론을 발표하자 신한청년당은 김규식을 대표자로 프랑스 파리로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의 정당성 및 국제연맹의 동의를 통한 외교독립을 추진하였다.

이때 김규식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논의하는 프랑스의 파리강화회담, 미국의 국민회와 동지회를 흡수한 통합 임시정부를 발족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의 망명 임시정부 중 하나. 1919년 9월 11일에 통합하여 발족한 통합임시정부는 명목상 한성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승계하였지만 임시정부의 인적·물적 구성은 상해 임시정부 체제로 유지되었다.

1919년부터 1932년 상해를 떠날 때까지 임시정부는 많은 활동을 주관했다. 일제가 승냥이와 늑대처럼 잔인하게 우리를 할퀴고 있을 때 임시정부 수립은 큰 희망이었고 가능성이었다.

당시 임시정부의 탄생은 조선 백성이 아직 건재하다는 천명이며 일본의 야욕을 세계에 알렸던 쾌거였다. 4월13일 임시정부의 수립은 국통을 바로 세우고 국맥을 이은 것이며 국체를 가다듬어 독립운동의 기초를 마련한 중대한 일이었다.

우리는 기념할 날이 많다.

역사가 깊기에 당연히 그런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수립일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며 그것은 우리가 더는 쓸개 빠진 민족으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우리들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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