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5월 1일 노동절(메이데이(May Day)(1)헤이마켓사건(Haymarket affair)

노동절(勞動節, Labor Day),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한 휴일. 메이데이(May Day),워커스데이(Workers' Day) 등으로 불린다.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휴일로서, 매년 5월 1일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9월 첫째 월요일, 유럽·중국·러시아 등에서는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8·15광복 후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했으나,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1963년 4월 17일 공포, 법률 제1326호)에 따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창설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 대신 근로자의 날로 정하여 기념했다. 그러나 1994년부터 다시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수만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19세기 말의 서구사회는 빈부격차가 산업혁명 이후 다시 한 번 급격하게 벌어지는 시기였다. 소위 '귀족자본주의' 의 전성기였던 1880년대, 특히 미국에서는 임금은 삭감되고, 실업률은 올라가는 최악의 노동환경이 제공되었다.

주 6일, 평균 16시간에 이르는 노동시간의 문제도 심각했다. 영국 못지않은 아동노동력의 착취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산업재해 역시 끔찍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여러 노동자 집단과 지하조직 동맹체들은 꾸준히 노동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려 노력했고, '미국 및 캐나다 노동조합연맹' 에서는 1886년 5월 1일을 기해 '하루 8시간 노동'의 조건을 요구하는 총 파업을 하기로 결의했다.

전국에서 작은 힘들이 모여서 꾸준히 결성된 'Eight Hour Leagues' 는 결국 1886년 5월 1일에 미국 전국에서 19만명에 이르는 파업 동참을 이끌어 냈고, 토요일이었던 그 날에는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순조롭게 파업과 시위를 마무리 했다.

헤이마켓사건(Haymarket affair)

1886년 남북전쟁 후 미국 자본주의 발전 도상에 시카고에서 일어난 노사간(勞使間)의 분쟁 사건. 1666년 5월 1일 8시간노동제를 요구하는 미국 노동자들의 시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노동운동의 중심지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는 경찰관의 노동자 살해에 항의하는 집회가 무정부주의자들의 주동으로 5월 4일 헤이마켓광장에서 열렸다. 집회는 평온하게 진행되었다.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자 누군가가 폭탄을 던져 난투가 벌어지면서 쌍방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 경찰관 살해를 교사하였다는 혐의로 무정부주의자 8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 받았다.

1887년 11월 11일 열린 사형 집행으로 4명이 죽었고 나머지 한 명은 사형 집행 전날인 11월 10일 감옥에서 자살하였다. 이후 1893년 주지사 O.게르드가 재판이 부당하였다는 이유로 금고형을 받은 3명을 특사(特赦)하였다. 오늘날 노동자의 축제일로 정해져 있는 5월 1일의 메이데이(노동절)는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노동조합연맹과 파업의 진원지가 되었던 시카고에서는 8만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 다음 노동일인 5월 3일 월요일에, 몇 회사가 직장폐쇄를 하면서 일어난 충돌로 인해 6명이 사망했고, 이를 항의하기 위해 다음날인 5월 4일에 시카고의 '해이마켓(Haymarket) 광장' 에서 열린 집회에서 역시 경찰과 시민 6명이 사망했다.

노동조합연맹의 지도부 8명은 곧바로 경찰에 잡혔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 중 한 명은 감옥에서 자살을 선택했다. 나머지 지도부 중 4명 역시 1887년에 사형집행을 받았다. 이들의 사형이 가까워 오면서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항의가 빗발쳤고, 연대의 움직임 역시 활발하게 이뤄졌다.

'해이마켓 광장 사건'의 파급력이 전 세계적인 범위로 확대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1894년에 나머지 세 명은 극적인 사면을 받게 되었다. 이제 '8시간 노동제'의 이슈는 전 세계적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고, 미국 및 캐나다 노동조합연맹은 다시 한 번 1890년 5월 1일에 이 문제에 대한 총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한다.

1889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맞아 '통합 사회주의자 대회' 가 열린다. 이 대회에서 미국처럼 '8시간 노동제'에 대한 쟁취를 위해 국제적인 시위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고, 그 날짜 역시 1890년 5월 1일로 정하게 된다. 이 연대회의의 이름을 '제 2차 인터내셔널' 이라고 명명한다.

1890년 5월 1일은 바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노동절의 기원이다.
한국의 노동절은 일제 치하였던 1923년 5월 1일에 조선노동총연맹에 의해 2000여명의 노동자가 모인 가운데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 방지'를 주장하며 최초로 행사가 이루어졌다.

해방이후에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의 주도아래 노동절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1958년부터 대한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전신) 창립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정해 행사를 치러오다 1963년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어 기념해왔다. 1964년에는 미국처럼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이후 노동절의 의미가 왜곡되고 이름마저 바뀐 것에 대하여 노동단체들은 5월 1일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노력과 투쟁을 계속했고 이런 갈등이 계속 이어져 오던 중 문민정권이 들어선 후 1994년부터 그 기념일이 3월 10일에서 다시 5월 1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름은 노동절로 바뀌지 않고 근로자의 날 그대로 유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저작권자 © 청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