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로레타 린치와 강경화를 보면 비슷한 면과 다른 점이 있다.

두 여성 모두 유리천장을 뚫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로레타 린치는 실력을 보였고, 험난한 정책 도덕성 검증을 거쳐 미국 국회의원들의 표를 통해 등장한 점이다.

한국의 강경화는 이미지만 있고 지금까지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도덕성은 만신창이가 됐고, 대통령과 여당만 찬성하고 표대결없이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다.

2015년 FIFA를 저격한 여성 저승사자' , 노예의 후손 여성 최초 미국 법무부 장관 로렌타 린치, 미국 역사상 최초 흑인 여성이 법무부 장관이다.

미국 연방상원은 당시 찬성 56.반대 43으로 로레타 린치 법무부 장관 지명안을 인준했다. 물론 반대표는 모두 공화당에서 나왔다. 공화당 의원 10명이 찬성표를 던져 인준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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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 장관의 인준은 5개월에 걸친 공화.민주 양당간의 줄다리기 끝에 이뤄졌다.

불법체류자 구제 행정명령 등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이민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린치를 바라보는 공화당 의원들은 눈길이 곱지 않았다.

결국 공화당은 인신매매 처벌법안을 구실로 린치 지명자의 인준을 계속 미뤘다.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대표가 반낙태 조항을 인신매매 처벌법안에 삽입하면서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새 법무부 장관을 인준하지 않겠다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인신매매 처벌법안은 결국 양당이 피해자의 낙태 지원을 연방정부 자금으로만 제한하기로 합의하면서 22일 찬성99.반대0으로 통과됐다. 비로서 최초의 흑인 여성 법무부 장관이 탄생할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이 여전히 반대표를 던지며 불체자 구제 행정명령에 불만을 표시했다.

린치 장관은 취임 하자마자 최근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민권 관련 사건들을 맡게 된다. 특히 흑인 커뮤니티와 지방 경찰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의 정책 방향에 관심이 집중됐다.

린치 장관은 청문회에서 테러 위협과 사이버 범죄 대응 소수계 커뮤니티와 경찰의 관계 개선 등에 힘쓰겠다고 강조했었다.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나고 자란 린치 장관은 평생 흑인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워왔다. 흑인이 드문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는 시험 점수가 학교 관계자들의 예상보다 좋을 때 재시험을 지시받았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서는 법정에서 속기사로 오해받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린치 법무장관 내정자를 두고 "약 30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강인하고 공정하며 독립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평가했다.

1959년 5월 21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버러에서 태어난 린치는 1981년 하버드 대학교를 영미문학을 전공으로 졸업하였고 곧바로 하버드 로스쿨로 진학하여 1984년 법무박사(J.D.) 학위를 취득하였다.

로스쿨 졸업 후 뉴욕 로펌 케이힐 고든(Cahill Gordon & Reindel)에 입사하여 송무변호사(litigation associate)로 근무했다. 1990년부터 뉴욕 주 동부지구 검사로 활동했다.

흑인 노예 후손으로 생애를 편견과 싸워온 린치는 1997년 애브너 루이마 성고문 사건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백인 경찰의 흑인 구타 사건으로 인종차별 문제로 번질 뻔했던 이 사건을 린치는 법치 원리에 따라 중립적으로 처리해 능력을 입증했다.

1999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뉴욕 주 동부지구 연방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 11월 8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린치를 법무장관 에릭 홀더 후임으로 지명하였고 2015년 4월 27일 제83대 법무장관으로 취임하였다.

린치 장관이 세간에 이름 알린 것은 1997년 아이티 이민자 출신 애브너 루이마의 성고문 사건을 통해서 당찬 이미지를 세상에 알렸다. 뉴욕 경찰관 저스틴 볼페가 자신에게 주먹질한 것으로 오해하고 루이마를 경찰서로 연행, 빗자루 손잡이를 항문에 집어넣고 구타한 사건이다.

백인 경찰이 흑인에게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흑인들의 분노가 치솟았지만 당시 사건을 맡은 린치는 "인종에 따른 국민투표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보도했다. 당시 검찰 측은 최고형을 구형했고 볼페는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린치 장관은 FIFA의 부패를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이끌었다.

린치 장관이 FIFA수사를 한 것은 1999년부터다.

7년 동안 뉴욕 동부지검 연방 검사로 재직하며 세계 주요 은행의 자금 흐름을 조사하던 린치 검사는 이 과정에서 FIFA 비리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여기에 지난 3년간 FIFA 뇌물 스캔들을 조사해온 미 연방수사국(CIA)의 제임스 코미 국장도 뉴욕남부지검 연방검사 출신이다. 코미 국장 후임으로 뉴욕 남부지검 검사를 지낸 마이클 가르시아도 주목되는 인물.

그는 FIFA 윤리위원회 수석 조사관으로 2018년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관련한 비리의혹을 조사해오다 2014년 12월 FIFA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며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당시 그는 19개월간의 조사를 통해 430쪽 분량의 보고서를 냈으나 FIFA는 42쪽으로 압축해 발표했다. 가르시아 전 검사는 "사실과 결론이 대단히 왜곡됐다"며 FIFA를 맹비난했었다. 외신들은 그가 코미 국장과 린치 장관에게 FIFA의 문제점을 내부 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FIFA 고위 간부 7명은 미국 사법 당국의 요청을 받은 스위스 경찰에 체포됐다. 블래터 회장 또한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 검찰은 블래터의 측근인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의 비리를 추적했다. 발케 사무총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2010년 월드컵 개최지로 확정하기 위해 중남미 집행위원들에게 1000만 달러(약 111억)의 뇌물을 공여했다.

블래터는 턱 밑까지 치고 온 사정의 칼날에 왕좌를 내려놨다.블래터는 "나의 권한은 더 이상 모든 사람들에게 지지받지 못한다. FIFA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FIFA는 근복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강경화
문재인 대통령이 압도적 지지도를 통해 도덕성보다 전문성을 택했다. 그런 점에서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정치와 국제사회는 냉혹하다. 청문회때 약속한 사항은 조속하게 실천하기 바란다. 당신의 업무 능력을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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