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요즈음 중 2만큼이나 무섭다는 ‘미운 다섯 살’ 또는 어린애들이 공공장소에서 부모의 말도 업소의 말도 듣지 않는 주의력결핍에 가까운 과잉행동장애(ADHD증후군)처럼 행동하는 애들이 많아지다 보니 노키즈존(No Kids Zone)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노키즈존은 영유아와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곳을 말한다. 성인 손님에 대한 배려와 영유아 및 어린이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한다. 노키즈존에 대해서는 영업상 자유라는 견해와 영유아를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설정하고 사전에 차단해 버린다는 점에서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가 대립한다.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특정 손님의 입장 거부는 민법상 계약 과정에서 손님을 선택하고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에 속한다고 본다.

반면 노키즈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헌법상 평등의 원리, 차별 금지의 원칙 등에 따라 업주의 과잉 조치라고 본다.

이런 일은 세계적 현상이다. 프랑스 말에 앙팡루아(enfant roi)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왕 아이’, 즉 가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이를 말한다.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떼만 쓰면 뭐든 용인되며,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 된 듯 느끼며 행동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댁의 아이는 앙팡루아군요?”라는 말이 최고의 모욕이다.

한국도, 중국도 가족 계획을 심하게 하다보니 한 자녀들이 더욱 귀엽고 더욱 사랑스러운 나머지 브레이크 기능을 가르치지 않는 탓이다.

프랑스의 아동발달 심리학자 디디에 플뢰는 좌절과 결핍을 배우지 못한 이런 작은 독재자는 빠른 시간 안에 부모의 권위를 빼앗고 ‘폭군’이 된다고 지적했다.

“우리 애는 아무도 못 말려요"라며 쉽게 항복하고 아이의 비위를 맞추는 부모 밑에서 큰 아이는, 행복하지도 않을뿐더러 결국 자제력 부족으로 고통받는 충동적인 ‘성인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애들이 학교에서 싸움꾼 말썽군이 되고 왕따를 만드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미국 여기자 파멜라 드러커맨이 쓴 ‘프랑스 아이처럼’에는 미국식 ‘애착 육아'에 익숙했던 그녀가 프랑스에 정착해 아이를 키우면서 받은 충격이 기록돼 있다.

어째서 프랑스 유아들은 레스토랑에서 얌전히 앉아 어른과 똑같은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시도때도 없이 집에서 초콜릿을 달라고 소리치지 않는가, 쇼핑센터에서 떼를 쓰거나 내달리지 않는가.

오랜 취재 후, 그녀는 루소의 교육관이 프랑스 혁명과 시민사회를 거치면서 사회적 합의에 이르고 각 가정의 양육 철학으로 자리잡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연주의 철학자인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오로지 한 가지, ‘자유를 잘 규제하기만 하면 된다’고 썼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에 대한 규칙만으로 아이를 가르칠 자신이 없는 사람은 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

교육은 불완전하지만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인 아이를, 자체로 존중하면서 ‘올바른 시민’으로 키워내는 일이다.

얼마 전 한 영국인이 자국에 카페를 개업하며 "개와 청소년은 환영하지만, 12살 이하 어린이의 입장을 금지한다.”는 간판을 내걸어 갑론을박이 벌어진 일이 있다. ‘개는 되지만, 어린아이는 안된다’는 ‘노키즈존' 선언 문구는 자극적이지만, 행간의 뜻은 선명하다.

사회적 예절을 가르치는 데 있어, 애견인이 ‘권위를 빼앗긴' 부모보다 더 낫다.

가정 교육에 대한 공감대가 높은 프랑스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어른들이 아이에게 ‘사쥬(sage, 현명해라)’라는 말을 자주 쓴다.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얌전히 있어’라고만 하면, 아이는 그 시간 동안 길들여진 행동을 해야 하는 야생동물 취급을 받는 것과 같다. 반대로 ‘현명 하라’는 말은 이미 아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도 어린이들에게 점잖다. 어른스럽다는 말을 사용했다. 잘 훈련된 예의를 갖춘 지혜를 가진 아이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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