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할리우드 굴지의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혐의가 제기된 후 미국에서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미투”(#MeToo)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거물급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30년 걸친 성추행을 보도했다.나도 당했다(me too)'는 뜻의 폭로 릴레이가 할리우드를 넘어 미국 체육계, 프랑스 정치계, 네덜란드 과학계에 이어 세계 최고 양성 평등 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으로까지 번졌다.

명 배우들과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나도”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음을 토로하며 와인스타인의 행태뿐 아니라 영화계 및 사회 일반의 젠더 불평등과 폭력을 고발했다. “미투” 캠페인은 미국 밖으로도 번져나갔다.

캠페인의 파괴력은 1200만명 여성이 동참한 숫자에 나타난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여성 스스로 "나도 당했다" 털어놓기란 웬만한 용기 없인 불가능하다. 숫자의 힘은, 성범죄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말단 직원부터 톱스타, 지식인까지 얼마나 폭넓게 이뤄지는지 보여준다.

세상 모든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주장하는 건 결코 아니다.
집단적 고백의 파급력은 크다.

한국도 지난해 문단 성폭력 사태, 영화계와 예술계의 추문에서도 피해자들의 용기가 현실을 고발하는 큰 역할을 했다. 강남역 10번출구 사건 이후에도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침묵을 깨는 행위가 논쟁과 사법절차 등을 거쳐 인식을 변화시키고 풍토를 개선하는 과정은 길고 지난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반복되고,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이 “나도”를 외쳐야 할까.
실제로 피해 여성들의 외침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세월 여성들이 똑같은 피해사실을 반복적으로 성토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피해자들이 “나도”를 외친다고 가해자 남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원인은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무지의 대물림이다. 성폭력 가해자 상담을 해온 여성학자 정희진은 "왜 성폭력을 했느냐 물으면 많은 가해자가 '길 가다 소변이 마려운데 참을 수 있나요?'라고 반문한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성욕은 참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유린한 일본군 만행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여자의 성이 남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착각도 성범죄를 부른다.

짧은 치마 입은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고, 웃음 많은 여자는 헤프다는 착각들. 권력욕 강한 일부 엘리트일수록 그 착각은 심해진다.

부하 여직원을 향해 "나는 너의 가슴도 만질 수 있다"고 했다는 감사원 국장의 오만은 우연일까. '비키니 가슴 시위'를 독려하고 "숏팬츠 안에 쫄쫄이 속옷 입지 말라"는 마초들이 최고 권력 주위에 득시글하다.

대다수 선량한 남성은 억울하겠지만 갈수록 잔혹해지는 성범죄의 고리를 끊을 주역은 남성 자신이다.
남성 문화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우리는 모든 남성이 가해자가 아님을 안다.

여성이 “나도”를 외치지 않아도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남성들이 많다
남성들 사이의 문화를 내부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들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와인스타인 추문의 경우, 쿠엔틴 타란티노 등 남자들 몇 명은 알면서도 침묵했음을 밝히고 자성했다.

인도와 호주에서 시작된 남성들의 '내가 그랬다(#IDidThat)', '어떻게 바꿀 것인가(HowIWillChange)' 캠페인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호주 작가 벤저민 로는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성범죄를 어떻게 줄일지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배우 마크 러팔로도 "더 이상 '캣콜링(길거리 성희롱)'을 하지 않겠다"며 동참했다.

'미투' 열풍이 성범죄 신고율 1.9%에 불과한 한국에도 상륙할지는 미지수다.

남성 캠페인은 더욱 요원하다. 설령 용기 있는 몇이 앞장선다 해도 성평등 의식에 관한 한 탈레반 못지않은 인터넷 좀비들이 몰려와 온갖 욕설로 초토화할 테니. 바다 건너 저들의 자성이 부럽다.

알면서도 침묵했던 것이 타란티노뿐이었을 리는 없지만, 남성들의 성찰적 고백은 이어지지 않았다. 폭력적 남성 문화의 공고함이 그토록 깨기 어려운 것이기에 남성들의 자각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마지막에 기억하는 것은 적이 했던 말이 아니라 친구가 지켰던 침묵이다.” -마틴 루터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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