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이집트 시나이반도 북부 이슬람 수피교도들의 모스크에서 금요 기도회가 열린 지난 24일 테러로 희생된 이들은 305명이다. ‘방치된 화약고’로 불리던 시나이반도에서 이집트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

2011년 ‘아랍의 봄’과 2013년 쿠데타 이후 혼란을 비집고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이 자리 잡은 시나이반도가 근거지를 잃은 이슬람국가(IS)의 새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건 당일 무장 괴한 25~30명은 차량 5대에 나눠 타고 북 시나이반도의 주도 엘아리시에서 서쪽으로 40㎞ 떨어진 알라우다 모스크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예배가 끝날 무렵 정문과 12개의 창문을 막고 신도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어린이 27명을 포함해 최소 305명이 숨졌고 128명이 다쳤다.

IS의 이집트 지부인 ‘윌라야트 시나이’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IS는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 수피 신자들도 ‘이단’으로 본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테러 직후 “보복하겠다”며 테러 단체의 근거지로 여겨지는 알아베드 산악지역에 공습을 단행했다.

이번 테러는 이례적인 대규모 사상자와 잔악성으로 IS의 새 전술을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IS가 시리아·이라크에서 밀려나자 이집트로 넘어온 IS 전투원들이 시나이에서 극단적 전술을 편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자생적 기독교 종파인 콥트교나 이슬람 수피 같은 ‘소프트 타깃’에 대한 공격은 종파 간 증오를 자극해 엘시시 정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

시나이반도(Sinai Pen.)
시나이반도는 성서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이 있는 곳으로 성지순례나 관광을 위해 많은 내·외국인의 발길이 닿던 곳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삼각형의 반도다.

서쪽은 수에즈 운하와 수에즈만(灣)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동쪽은 아카바만(灣)을 사이에 두고 아라비아 반도(사우디아라비아 및 요르단) 및 이스라엘에 각각 접하며, 북쪽은 지중해에 면한다. 지리적으로는 북부와 남부로 크게 2분된다.

북부는 약 1,500m 높이의 엘티 산지에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이고 전반적으로 사구(砂丘)로 뒤덮인 사막지대가 전개된다.

남부는 카타리나산(2,637m)을 중심으로 화강암 산지로 뒤덮여 있는데, 이는 홍해(紅海) 연안을 따라 뻗은 아프리카 산지의 연장이다. 정착주민의 대부분은 북부의 지중해·수에즈 운하 연안에 살고 있다.

시나이의 어원은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디아어(語)로 달을 의미하는 신(sin)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고대로부터 전략적인 중요성 때문에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근세에는 시나이반도의 영유를 둘러싸고 터키와 이집트가 싸웠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이집트령으로 인정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시나이반도는 이따금 이스라엘에 점령되었고, 1967년 중동전쟁(中東戰爭) 이래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쟁 후, 1974∼1975년 병력의 분리협정에 따라 연간 약 500만 t의 산유량을 내는 유전지대를 포함한 반도의 일부가 이집트령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1977년 11월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과 1978년 9월 미국 대통령 카터가 주선한 캠프데이비드 회담을 통해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이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군대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1982년 4월에는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완전히 넘겨주었다.

최근 몇년 새 무장단체의 반자치 지역이 되면서 일반인은 물론 언론도 접근이 불가능한 위험지역이 됐다.

수도 카이로 등 주요 도시와 물리적으로 떨어진 시나이반도는 이전부터 이집트 치안의 약한 고리였다.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으로 점령한 시나이반도에서 1979년 철수할 때 이집트는 이곳에 주둔하는 병력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정권이 무너지고 치안 공백 상태가 되자 이곳에 무장단체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직후 이웃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와 2013년 이집트 쿠데타로 인한 혼란을 틈타 더 많은 무장조직들이 모여들었다.

‘윌라야트 시나이’의 전신이자 이곳을 근거지로 삼은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는 2014년 IS에 충성맹세를 했다. 현재 전투원 규모가 800~150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2015년 10월 홍해 휴양지 샤름엘셰이크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여객기가 시나이반도 북부 상공에서 추락해 탑승자 224명이 모두 숨졌다. 당시 ‘윌라야트 시나이’는 여객기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이곳에 살던 콥트 교도들은 끊임없는 표적 공격에 시달리다 올해 초 수백명이 나일강 계곡으로 도망쳐야 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2013년 권력을 잡은 뒤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시나이반도에서 대테러전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곳에 오래 터를 잡고 살아온 베두인족을 고려하지 않은 진압 일변도 군사작전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베두인족은 이스라엘 철수 후 ‘부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중앙정부로부터 소외와 차별을 받아왔다.

엘시시 정부는 지난해부터 테러 소탕을 이유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 지구와 연결된 터널을 대거 파괴해버렸다.

극빈층인 베두인들의 생계수단인 마약·무기 밀수 통로가 사라지자 이슬람 극단주의는 더 몸집을 키웠다.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이집트 전문가였던 앤드루 밀러는 뉴욕타임스에 “테러리스트들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지역에서 IS를 지지하는 민심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 알아흐람은 26일 “정부가 낙후된 이 지역 경제를 개발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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