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1)국민의 당 판 - '난닝구’대전
(2)보수와의 야합인가, 호남 기득권 투쟁인가

국민의당 내홍은 일회성 세력다툼이 아니라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다툼이다. 잠깐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다. 갈등이 봉합돼 수면 아래로 잠복하는 게 아니라 ‘갈 데까지 가보는’ 정말 이혼을 하겠다는 싸움이다. 결국엔 분당까지 갈 수도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이번 내전은 안철수 당대표가 유승민의 바른정당 잔류파와 통합을 추진하면서 촉발된 것이다.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등 이른바 ‘호남 중진’이 이에 극력 반대하면서 전운이 짙어졌더. 호남파는 끝까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할 경우 분당도 불사하겠다는 카드를 내보이면서 안철수 주저앉히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반면, 안철수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오불관언 통합을 밀어붙일 기세다.

양측이 내전을 벌이는 이유는 낮은 당 지지율과 내년의 지방선거다.

40여 석의 국회 의석을 보유해 ‘캐스팅 보터’를 자임하는 판에 여론조사마다 당 지지율이 4~5%를 맴돌고 있으니 당 지도부로선 미칠 노릇일 게다.

때로는 원내교섭단체에마저 끼지 못한 정의당에까지 밀리기도 하니 큰일은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 참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된다면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시나브로 해체될 게 뻔하다.

문제는 양쪽의 해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안철수
‘외연 확장’이란 이름으로, 온건보수라고 할 유승민의 바른정당 잔류파와 통합해 자유한국당이 채우지 못하는 보수의 진공 지대로 흘러가자는 거다. 중도와 온건보수의 연대이고, 좀 거칠게 말하자면 마음 줄 데 없는 보수 표를 이삭줍기하자는 것이다.

안철수의 계획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면,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이념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제3의 길’ 찾기라 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지난 ‘장미대선’을 치러본 결과, 호남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각축전을 벌여 우수리 표나 얻어선 대통령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절감한 나머지 나름대로 그랜드 디자인을 했다고 보면 되겠다.

안철수는 유승민과 통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호남파는 ‘평화개혁연대’란 걸 만들어 격돌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보수의 일각을 공략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안철수와 호남의 현상 유지를 목표로 삼은 호남파들이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걸고 싸우는 내전이니 쉽게 봉합될 리 만무하다.

호남중진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호남 중진’의 속셈은 다르다. 그들도 당 지지율이 낮아 곤혹스러워 하고는 있지만, 결국 ‘모든 길은 호남으로 통한다’는 거다.

당의 뿌리인 호남을 버리고 영남의 보수와 손을 잡으면 호남의 외면을 자초한다는 것. 미우나 고우나 호남에 읍소해서 당의 비빌 언덕을 마련해야지 안철수 식으로 나가다가는 ‘게도 구럭도 놓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호남에 기반을 둔 그들의 속내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영남의 비주류와 손잡아 봐야 어차피 호남에서 출마할 자신들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칫 호남 유권자의 역린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추풍낙엽이 될 거란 걱정이다.


이들의 정체성 논란을 보면 ‘난닝구’ 싸움이 연상된다.


제1차 난닝구 싸움
노무현 정권 출범 초인 2003년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빽바지’와 ‘난닝구’의 충돌이 있었다.

당시 유시민이 ‘백바지’를 입고 국회에 첫 등원했대서 논란을 빚은 것에서 유래한 이른바 개혁파인 ‘빽바지’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맞서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의 호남 인사들인 ‘난닝구’들이 민주당 사수로 맞서면서 극한대립이 빚어진 거다.

‘난닝구’는 2003년 9월 민주당 해체를 결의하려던 당무회의장에 난입했던 옛 민주당 당원들이 러닝셔츠 차림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어쨌거나, ‘난닝구’는 호남 지역주의에 기대 이 지역에서 오랜 세월 ‘토호’처럼 군림해온 일부 호남 기득권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가 담긴 상징어다.

제 2차 난닝구 싸움
2015년 제2차 ‘빽바지’와 ‘난닝구’ 전쟁을 벌이다 안철수와 손잡고 나가 창당한 게 국민의당이다. 그날이 오늘이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더러 물러나라고 공세를 펴다가 말을 들어주지 않자 뛰쳐나가선 호남에 가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벌여 나름의 성과를 얻긴 했다.

지금 싸움은 제 3차 난닝구 싸움

이제 이들은 안철수를 상대로 제3차 ‘난닝구’ 전쟁을 벌일 기세다.

이 사람들,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2년가량 남은 총선 때는 호남에 달려가 “이번엔 안철수에게 까였다”고 읍소할지 모른다. 어쩌면 다시 받아주지나 않나 하고 더불어민주당 문전을 기웃거릴 수도 있을 게다.

정치란 게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정치적 신조보다는 국회의원 배지가 더 소중한 것이 기득권 패거리 적폐들의 신조다.

호남을 볼모 삼아 몰려다니면서 패거리 정치를 계속했다간 국민의 냉혹한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주머니 속의 공깃돌’ 같았던 예전과 달리 국민들이 이젠 똑똑해지고 영악해졌다.

안철수나 호남파 모두 대통령 자리나, 국회의원 자리가 눈앞에 보일 게다.

전남지사 자리도 마찬가지다.

이혼하든, 재혼하든 알아서 해라.

‘중도와 보수 대통합’도 좋고 ‘제3의 길’도 좋지만,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

정치가 어디 장난인가. 가능하면 양비론을 펼치고 싶진 않지만, 안철수와 호남파, 둘 다 도긴개긴, ‘도토리 키 재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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