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새해가 되면 우리는 으레 신년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집안의 달력을 교체하고, 1년동안 쓸 다이어리를 선택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워보기도 하고, 계획과 계획 사이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궁리해보기도 한다.

흘러가는 시간은 잡을 수도 없고, 다시 돌아오지도 않기 때문에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일종의 요식행위다.

그러다 며칠, 우리는 다시 무심결에 시간을 흘려보낸다. 실천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어느 날은 하루가 눈 깜빡하는 사이 지나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디 가니 시간이란게 참 요상스럽기도 하다.


우주에서 가장 매정한 괴물은 시간(時間)이다.
우리는 그 우주를 지탱하는 먼지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영원할 수 없어 시간이 지나면 먼지처럼 사라지는 운명을 알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시인은 인간을 ‘먼지’, 즉 ‘아담’이라 불렀다.

이 깨달음은 인류에게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기술인 예술을 통해 문명을 선물했다.

우리는 시간을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다. 시간은 우주가 탄생됐다는 146억년 전 빅뱅의 순간부터 1초도 쉬지 않고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들을 조용히 소멸시켰다. 우리가 거주하는 지구도, 지구가 일원으로 있는 태양계도 시간에 의해 소멸돼 언젠가 멈춰 사라질 것이다.

만물은 서서히 매순간 죽어간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기본 조건이다.

인간은 누구나 시간의 함수인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숙명에 공간적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문명의 발달로 활동공간은 늘어났지만 어디까지나 지구 표면에 머물고 있다.

추상적 관념인 시간에 대한 사고방식은 문명과 시대의 특성으로 이어진다. 유사 이래 시간은 늘 존재해왔지만 시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바뀌어왔다.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헬라어(그리스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크로노스,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신(太初神)중의 하나로 자연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자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결정되는 시간을 말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다.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시간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객관적 측정 기구인 시계와 달력상에 나타나는 시간으로 인간과는 분리된 절대적 양의 개념이다.

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의 아들이며 기회의 신이라 불리었다.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한시간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의 한시간의 느낌은 차이가 있다. 즉 국가와 사회의 발전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운명과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카이로스는 특정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이다. 인간이 현실에서 만들어내는 상대적 질의 개념이다. 크로노스는 1일, 1개월, 1년처럼 객관적으로 흘러가지만, 카이로스는 사건별로 진행되며, 천천히 가기도 하고 급속히 흐르기도 하며, 때로는 거꾸로도 흐른다.

하느님을 만난시간은 카이로스다.
깨달음을 얻은 시간은 카이로스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선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시간에 얽매이고 휘둘리며 정신없는 삶을 살기보다는 내 자신이 직접 시간의 주인이 돼 능동적인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작심삼일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내는’데 급급한 사람은 크로노스에 매몰돼 있는 사람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찾으며 시간을 샅샅이 찾아쓰는 사람은 카이로스와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이로스는 우리 삶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찰나가 아니다. 역사학자 E.H 카의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현재는 과거를 비추고 미래를 준비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나기 위해 특별한 계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무미건조한 목표보다는 비전을 설정하고, 설정한 비전을 한 해를 살아가는 사명이자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목적이 있는 삶, 비전이 이끄는 삶은 활력과 재기가 넘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이 정한 비전을 주변 사람과 공유하는 것도 좋다. 비전을 공유하고 서로 독려하는 시간은 삶 가운데 카이로스가 자리매김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의욕적이고 힘찬 하루를 시작하는데서부터 출발하자

하루를 이끄는 목표를 정하고, 살뜰하게 실천해나가는 재미를 누려보자.

그때 마주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지나간 과거를 후회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다가올 미래를 불안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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