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그들만의 잔치’다.

책이란 가장 이상적인 문화를 돈벌이 수단 정치자금 모금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더러운 장사다. 이런 곳에 가보면 잇권에 관계된 사람들이 엄청 많이 온다.

세계에서 가장 책을 읽지 않는 한국, 서점이 사라지는 한국, 출판이 죽은 한국에서 출판기념회는 성폭력 기념회 만큼이나 바람직스럽지 않은 행사다.

책을 사고 팔긴 하는데, 납득이 안 가는 장면이 펼쳐지는 이상한 행사다.

책을 사는 사람들이 도통 책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미리 준비한 흰 봉투에 담은 현금을 건네고 책만 받아간다. 결혼식 참가해 봉투 거네는 것보다 더 이상하다. 아무도 책값은 묻지 않는다. 정치인 출판기념회 얘기다.


각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력 인사들이 다 모이는 출판기념회

어느 실력자의 행사에는 1만여 명이 몰렸다는 후문도 들린다. 자기를 알리고 눈도장을 찍으려는 속셈이 뻔하다. 정작 책의 내용과 깊이는 뒷전이다.

출간은 자신의 학문과 지혜의 집적물을 대중에 처음 선보이고 평가해 달라는 뜻이다. 졸고(拙稿)라며 낮은 자세로 필명(筆名)을 얻는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독자와는 상관없는 허명(虛名)을 좇는 자리가 돼 있다.

적폐 정치인 출판기념회 제도가 개선될 계기가 있었다.

2014년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3년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아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그가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 특혜성 법안을 발의해 주는 대가로 한유총에서 조직적으로 돈을 건넸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2017년 7월 대법원은 그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출판기념회 후원금을 뇌물죄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

신 의원 사건을 계기로 지난 19대 국회에서 “출판기념회를 법적으로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도서를 정가로 판매하는 방안, 출판기념회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 등이 나왔지만 흐지부지됐다.

2015년 카드결제기까지 동원한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시집 강매 논란 때도 이런저런 보완책이 거론됐지만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노영민은 문재인 정부 들어 중국대사로 오히혀 영전해 나갔다.

현재도 출판기념회 관련 법 규정은 ‘선거 90일 전 금지’가 유일하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이 터지듯 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자기 홍보를 하며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이만한 기회가 없다.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정치자금법에 따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모금한도에 대한 규정도 없고, 모금내역을 공개할 의무도 없다.

지난해 청탁금지법이 실행되며 출마를 앞둔 공직자는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으로 후원액수가 제한되지만 정당한 ‘책값’으로 지급됐다면 여기에서 제외된다.

시중 도서가격보다 높은 액수를 건넸어도 이를 불법으로 간주해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 이같이 제도에 허점이 많다 보니 꼼수가 판을 친다. 사실상 음성적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통로로 전락한 게 정치판 출판기념회다.

이런 구태와 폐습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까. 출판기념회 정치인 퇴출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출판기념회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다.


“나쁜 책이든 좋은 책이든 모두 쓰는 데 많은 노력이 들고 저자의 정신으로부터 진지하게 나오는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


“세상에 책보다 더 이상한 물건은 없다. 그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인쇄하고 제본하고 팔고 사고 비평하고 읽고, 이제는 저술마저도 한다.” - 18세기 독일 물리학자 ,작가 게오르그 리히텐베르크.

너무 쉽게 내는 책, 영혼이 담기지 않은 책의 남발을 경계한 것이다.

책 한권을 쓰기 위해 도서관의 반을 뒤지는 지적 치열함을 강조한 말이다.

리히텐베르크의 말대로라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자와 지인들의 출판기념회보다 더 ‘이상한 모임’은 없다.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 원고를 출판하는 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시장에 가는 바보와 같다.” -20세기 미국 시인 제임스 릴리

저작권자 © 청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