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올바른 길은 앞길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어이 가는 것이다. 바로 절망에 대한 반항이다. 절망하며 반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희망으로 전투를 벌이는 사람보다 훨씬 용감하고 비장하다.-1925년 루쉰

“전사의 일상생활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다 영웅담과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영웅담과 관계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실제 전사는 그런 것이다." -루쉰

“가지나 잎을 따는 사람은 절대로 꽃이나 열매를 가질 수가 없다.” -루쉰

"먼저 대담하지 않으면 뒤에 가서는 할 수도 없고, 더 뒤에 가서는 당연히 보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게 된다."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루쉰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희망'이다. "희망이 없으면 존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다"라는 그의 소신은 목각판화운동으로 연결되었다.

문맹자가 많은 근대 중국에서 국민을 교화하고 계몽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이처럼 루쉰에게 판화는 하나의 예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대중과 만나는 수단이기도 했다.

육체적 질병보다 정신적 병으로 죽어가는 중국의 시대상황을 안타까워했던 사상가 루쉰의 외침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절망에 저항하면서 희망을 찾아가는 길을 열어주고, 청년들에게는 용기를 주고, 어른들에게는 삶에 대한 통찰을 주고,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지혜로움을 주고, 지식인들에게는 겸허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밥, 이성, 나라, 민족, 인류...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고, 원귀처럼 매달리고, 낮과 밤 쉼 없이 매달리는 자라야 희망이 있다. 지쳤을 때는 잠시 쉬어도 좋다. 그러나 쉰 다음에는 또다시 계속해야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라도 계속해야 한다.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은,다른 사람들이 실패를 보는 곳에서 성공을 보고그늘과 폭풍을 보는 곳에서 햇빛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마스든)


루쉰은 ‘아큐정전(阿Q正傳)’ 에서 주인공 아큐를 통해 자신이 굴욕적 패배를 당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자신이 패배하지 않았다고 자위하는,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보여준다.

루쉰은 상하이 근처 저장성(浙江省) 샤오싱(紹興) 사람이다. 추워지면 따끈하게 데워서 한잔하는 이른바 샤오싱주(紹興酒)의 본 고장 사람이다.

대지주의 자식으로 유복하게 자란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 당시 선진국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센다이 의전(현재 도호쿠대학 의학부)에서 수업도중 스파이로 잡혀 생매장되는 중국인들의 실상을 스크린으로 보고 생각을 바꾼다.

의술로 사람을 고치기보다 문학을 통해 고국의 정신을 바꿔야 한다고. 결단은 단호했다. 그는 즉시 상하이로 돌아와 치열하게 문학인생을 시작했다.

아시아 재패를 꿈꿨던 일본의 야망에 맞서 중국의 자각을 온 몸으로 외치던 세월이 지나고 대륙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결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상하이에서 숨을 거둔 루쉰.

마오의 문화혁명이 지나고 뒤늦게 사회주의 정부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문학은 인간본성을 추적하는 작업이다.

철저하게 탐구하고 꾸짖고 스스로 반성하는 궤도를 조금도 이탈하지 않았다.

‘무덤’, ‘열풍’, ‘외침‘, ‘방황’으로 이어지는 단편 시리즈에서 ‘고향’ ‘광인일기’ 까지 인간의 집요한 심리추적이다.

최고의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 에서 그려지는 “정신승리법”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정신승리법이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자기가 처하게 된 불이익이나 폭력적 상황을 합리화 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자기를 위안하고 넘어가면 어떤 모순도 다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아큐는 돈이 생길 때마다 도박을 한다.

늘 잃고 있다가 어느 날 큰돈을 딴다 그러나 그 돈을 강도에게 빼앗기고 무자비한 폭력까지 당한다. 아큐는 그 순간 내가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지렁이였다면 사람이 지렁이를 밟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생각을 하고 따라서 자신의 처지가 슬프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시켜버린다.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맞서봐야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개인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렇게 합리화 시키지 않으면 살수 없는 것이 민초들의 인생이므로 그저 순응하고 긍정하면서 자기를 달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처절한 방법 찾기다.

그 개미 쳇바퀴 인생들을 대신해 고단한 시대의 처지를 그려내려는 모습이 소설가 루쉰의 본 얼굴이다.

하지만 아큐를 통해 중국인들의 바보 같은 인생을 꾸짖고 싶은 마음이 숨겨진 메시지라고 봐야 한다.

나약한 개인으로 흩어지면 영원히 굴종의 길을 벗어날 수 없다, 부당함을 강요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정의를 부르짖고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길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개혁개방으로 물질은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정신은 메말라가는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다시 청량한 생명수를 뿌리고 싶은 대상으로 루쉰을 돌아보는 이유다.

청나라 말기 정처 없이 떠나온 샤오싱을 다시 돌아보고 쓴 소설 ‘고향’ 에서 그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길인가?

그것은 바로 길이 없던 곳을 밟아서 생겨난 것이고, 가시덤불로 뒤덮인 곳을 개척하여 생겨난 것이다. 예전에도 길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길은 생길 것이다.인류는 결국 쓸쓸할 수가 없다. 생명은 진보적이고 낙천적이기 때문이다. 루쉰(魯迅), (熱風,六十六生命的路)


100년 가까이 지나온 과거, 그 험난한 시절에 이런 혜안을 가졌다니 끝을 알 수 없는 대 문호의 정신세계가 경이로울 뿐이다.

낡은 대결구조와 지키지 못할 공약들이 자기합리화로 간단하게 용서되어야 하는 우리현실을 돌아보면 ‘루쉰의 길’ 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도 남북도 경제도 그저 여럿이 힘을 합치고 정직하게 만들어 가야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지금처럼 잘나있는 길도 외면하고 자꾸 과거의 산으로 엉뚱한 길을 고집하면 이것은 희망을 접고 세월을 뒤집어 거꾸로 가는 것이다.

"물에 빠진 개는 더 두들겨 패야 한다" -군벌과 봉건적 폐해에 대해 페어플레이를 뒤로 미루고 더욱더 철저하게 투쟁해야 한다 -루쉰(魯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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