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두려운 자본주의의 돼지

청주일보l승인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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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순수자본주의, 상업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 청교도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카지노자본주의,

자본주의 제1기, 즉 자본주의 1.0은 나폴레옹에 대한 영국의 승리에서 시작해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에 이어 대공황으로 막을 내리는 '자유방임 자본주의'다.

유럽에서 복지국가가 전성기를 누리고 미국에서도 루즈벨트의 뉴딜과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가 팡파르를 울리던 시기가 자본주의 제2기(2.0)다.

그것의 특징인 '사회 민주주의'와 '복지 자본주의'는 1970년대의 세계적 인플레이션으로 위기에 처한다. 제3기(3.0)는 마가렛 대처와 도날드 레이건의 시장 혁명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였는데, 이것은 2008년 가을 미국의 금융위기로 종을 쳤다.

자본주의 1.0과 자본주의 3.0의 공통점

<자본주의 4.0>에서 칼레츠키가 주장하는 바는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이전의 세 가지 버전과는 다른 자본주의 체제의 네 번째 버전이 만들어지는 중이라는 점이다.

그는 "순전히 시장의 인센티브로 돌아가는 사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파국을 맞을 것"이라면서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과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같은 고전에서도 성공적인 자본주의를 위해 정치 제도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본주의 3기가 국가와 시장의 분리를 철저히 추진했다면, 자본주의 4기는 국가와 시장이 다시 밀접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는데, "'자유 시장은 자유인을 만든다'는 대처-레이건의 낙관적인 슬로건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 이외에 아무런 끈도 남겨 놓지 않았다. … 자본주의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버렸다. 자본주의는 가족 관계로부터 그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 껍데기를 벗겨 버리고, 그것을 순전한 금전 관계로 되돌려 놓았다.

내가 본 자본주의는 범죄주의다. 세습적 탐욕주의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 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문제는 이게 일부 곡해되어 전달된 탓에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전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배 부른 돼지'의 의미는 어떤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여러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1. 문제점을 알고도 당장 잃을 것들이 두려워 개선할 의지가 없는 돼지같이 나태한 존재

2. 문제점을 이용해 자기 잇속만 챙기는 돼지같이 탐욕스러운 존재

3. 문제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돼지같이 어리석은 존재


공통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려 하는 의지가 없고 거기서 생길 이득만 추구하는 자'를 돼지의 부정적인 이미지(자유를 제한받지만 주는대로 군말않고 받아 먹으며 거기에 만족하고 자신의 자유를 제한당한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 존재)를 따와 만든 비판적 용어라고 보면 된다.

'자본주의의 돼지'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알고도 개선하려 하지 않는 나태한 자, 자본주의의 문제를 이용해 자기 잇속만 챙기는 탐욕스러운 자,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보면 된다.

자본주의를 수용하지 않은 국가, 즉 공산권 국가들이 으레 자본주의 국가들을 비난할 때 쓰던 용구였다.

현재는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코믹한 의미로 받아들여져 사용되는 단어다. 예를 들면 밸브 코퍼레이션의 창립자 겸 사장 게이브 뉴웰. (자본주의 국가 출신 = 자본주의, 살 찜 = 돼지).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자본주의의 돼지'는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단어는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싶다고 '자본주의의 돼지' 운운하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 명명했다.
예를들어 사람은 나치처럼 압도적으로 강한 권력 앞에서는 맞서려 하기보다는 복종하려는 심리가 생기는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나치에게 맞서는 것은 고난과 죽음만 불러올게 뻔하므로 고통스럽게 자유를 추구하느니 차라리 자유를 포기해 버린다는 것. 즉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자유의 짐을 벗어버리려는 심리를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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