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사회문제가 된 교회 문제 -애초부터 ‘평신도’는 없었다"

창조과학 논란, 정치 목사, 양아치 같은 대형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 목사의 성범죄, 종교인 과세 반대 등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들의 중심에 선 한국 교회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500여 년 전 종교개혁 당시 부패한 교회의 재현이랄까?

중세로 돌아간 느낌이다.

덩치를 키우려고만 했던 교회들은 성경무오설, 지구 나이 6000년 설,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 이신칭의(以信稱義), 십일조 강요, 성직주의 등 성경에 대한 그릇된 종교심을 가르치며 괴물로 변했다.

신사참배에 적극적이었던 과거를 털어내지 못한 채 목사에게 교회의 권력이 집중되었다. 문제를 일으킨 목사의 잘못을 덮기에 급급한 교계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재벌이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닮았다.

한국 교회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성경 해석에 대한 오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자신들의 권력과 행동을 합리화하는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급급했던 한국 교회는 이제 그 성장조차 멈췄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교회 내부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한국교회가 ‘평신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의아할 수밖에없다.

루터는 ‘교황’과 같은 집중된 권위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저항하는 자)가 되었다.

개신교는 출발할 때부터 ‘성직’ 계급과 ‘세속’ 계급을 엄별한 중세의 로마천주교회를 거부했던 종파다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이었던 ‘만인제사장’ 교리도 각 사람이 종교적 권위자가 내려보낸 ‘공식’적인 성서 해석에 억지로 복종하기보다는,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평등’에 무게를 둔 종교개혁의 정신은 로마천주교회가 말하는 성직자들과 평신도 사이에는 지위에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기틀을 마련한 ‘존 칼빈’(John Calvin)도 자신의 저작인 <기독교강요>(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에서, 교회 안에서 맡은 직분에 대해 “노동자가 일을 할 때에 연장을 쓰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특별한 권위나 권력을 갖고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평신도’라는 단어는 애초부터 없던 단어다.

계급과 계층이 나뉜 차별있는 사회를 지양하고, 모두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승동교회의 개척자인 사무엘 선교사가, 양반들의 귀싸움에도 끝까지 백정의 입장에서 차별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도, 초대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맡은 바 은사에 따라 공동체를 꾸렸던 것도, 모두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평등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계급과 계층은 제도를 통해 체계화 된다.

상하수직 구조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조직문화가 사회의 병폐를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듯, 한국교회에서의 직책구분과 이에 따른 계층 문화는 한국교회를 가장 병들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기억하자. 애초부터 평신도는 없었다.

계급적으로 일을 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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