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정부의 만시지탄 “폭염도 자연재해” 법 개정 시도

만시지탄이다. 추위보다 더위가 사람을 더 죽게 만드는 것 같다.

더위가 자연재해냐 아니냐는 법은 2016년도에 국회에 상정돼 있다.

또 뚜껑열릴 이야기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하는 내용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이 지난 2016년 8월 국회에 발의됐지만 2년 가까이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재난안전법상 ‘자연재난’은 태풍과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낙뢰, 가뭄, 지진, 황사, 조류 대발생, 조수(潮水), 화산활동, 소행성·유성체 등 자연우주물체의 추락·충돌,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폭염은 법이 정한 자연재난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현재의 더위 피해는 ‘재난구호 및 재난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등 보상이나 구호에 어려움이 있다.

반면 정부는 지금까지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하는 일에 미온적인 입장이었다.

지난해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행안부는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극심한 폭염을 온열환자가 급증하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면서 폭염 피해에 국가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안부는 내부적으로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상임위에서 관련 행안부가 법 개정에 찬성 의견을 낼 공산이 큰 셈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과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 등을 통해 폭염 피해와 관련된 체계적으로 대응이 가능할 전망이다.

7월 12∼15일까지만 한국에서 총 285명의 온열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2명이 사망했다. 싱가포르,홍콩, 동경 등 한국보다 적도에 가까운 나라보다 더 덥다.


우리는 과거 자료를 꺼내놓고 1994년, 그해 여름은 지독히 더웠다고 말한다.

당시 기상청 예보관들은 온갖 사전을 뒤져 ‘찌는 듯한 더위’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의 말을 다 썼는데도 더위는 그칠 줄 몰랐다.

이 고민은 그해 7월24일, 서울의 최고기온이 38.4도를 찍으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서 역대 최고기온 값을 경신했다. 전날 38.2도를 하루 만에 갈아치운 것이자, 1907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87년 만의 기록이었다.

무더위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폭염 일수 31.1일, 열대야 일수 17.7일이라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운 뒤에야 폭염은 멈췄다.

시민들이 낮에는 은행 등 대형건물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밤에는 집 밖으로 피서를 나오는 풍경이 벌어졌다. 거기에 7월8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까지 겹쳤으니 ‘체감 폭염’이 떨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4년 폭염에는 신기하게도 태풍이 북상해 더위를 식혀주었다.

이해 태풍은 여느 때와 달라 힘을 잃지 않고 북상하면서도 세력을 유지했다. 한반도 주변 수온이 높아진 탓에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았던 것이다.

8월 초에 온 태풍 브랜든은 바람 피해 없이 비만 뿌리고 소멸했다. ‘착한 태풍’ ‘효자 태풍’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환영받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장마를 서둘러 몰아내고 오는 듯싶더니 단숨에 1994년 폭염을 위협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다.

22일에는 38.0도까지 서울의 수은주를 밀어올렸다.

없는 사람들에겐 추운 것보다 더운 게 낫다는 말도 옛말이 됐다.
추위에 얼어죽는게 더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1994년보다 도시 열섬현상이 훨씬 강화된 터라 폭염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바람을 고려하지 않은 건설공사 남발 탓에 시내는 개판이다.

종전의 방침을 바꿔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인정하기로 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길이다.

바람의 통로를 막은 건축물들은 모두 없애라.

향후 바람의 통로를 건설 허가에 반영하라.

당분간 더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면서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폭염에 대한 대비, 특히 독거노인 등 취약 계층에 대한 각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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