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2005년 대법원 판결 -‘위력 존재 자체가 곧 행사’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53)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가 안 전 지사의 ‘위력’이 존재는 했지만 행사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다른 의견이 나온다.

항소심에서도 ‘위력’ 개념을 놓고 안 전 지사와 검찰이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수행비서 김지은씨가 신상을 공개하면서까지 피해사실을 허위로 폭로할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재판부가 깊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두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가 14일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권력적 상하관계에 놓여 있는 남녀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면서 “상대방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위력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한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위력이 존재는 했지만 행사되지는 않았다는 논리를 폈다.

“안 전 지사가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명되고 있는 지위 및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김지은씨)의 임면 등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점을 본다면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위력’을 두고 다른 정의를 내린 일도 있다.

대법원은 2005년 미성년자에 대해 위력으로 간음해 기소된 사건 판결에서 “위력이라 함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 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위력을 정의했다.

세력 그 자체를 말한다는 것이다. 한 서울지역 법원의 판사는 “위력은 관계에 있어서 힘의 문제이기 때문에 위력의 존재가 곧 행사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니겠느냐”며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재판부가 개별 행위에서 위력이 행사됐는지를 판단한 대목에서는 안 전 지사의 지위를 간과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잘나가는 대선주자였고 김씨의 고용에 대한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위력이 존재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인데, 과연 그 위력이 어떻게 표현돼야 행사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인지 불명확하다”며 “위력이 강간죄의 성립 요건인 폭행·협박보다는 분명 낮은 개념인데, 이를테면 안 전 지사가 김씨의 고용 문제를 언급하면서 성관계를 요구했어야 위력이 행사됐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안 전 지사 사건과 유사한 맥락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인정받아 피해자가 승소한 사례가 있다.

2008년 광주지법 순천지원 민사1부(재판장 선재성 부장판사)는 아동복지시설 원장이 직원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한 것이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원장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직원이 소송을 낸 사건에서 직원 승소라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인정한 배경에는 원장이 직원에 대한 채용과 해고 권한을 갖고 있었고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성공했다는 점이 포함됐다. 원장 측은 사랑하는 사이였으며, 직원이 도망가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안 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을 배척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원장이 자신을 해고하거나 다른 곳에서도 일을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앞선 성추행으로 인한 충격까지 더해져 저항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장이 자신의 보호·감독하에 있는 직원을 원장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위력으로 성추행 내지 간음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사랑하는 사이였음에도 시설을 그만두고 원장을 허위사실로 무고할 만한 특별한 사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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