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장자는 이를 평등한 상태를 만들기 위한 규제 적용이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갈수록 불통으로 간다. 이건 소통기제가 광속도로 발달한 이 시대의 역설만도 아니다. 1960년대 사이먼과 가펑클은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에서 노래한다.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며 말하고/ 듣지 않으며 듣는 체하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말은 권력, 갑, 기득권, 우월적 지위에 있는 모든 자가 배워야 할 도리다. 획일적인 하나의 잣대로 세상을 보고 다스려서는 안된다는 되새김질할 경구다,

앞의 절과 이 절을 간단히 의역한다면, 변무나 지지는 신체로부터 나왔다고는 하나 정상 인 인간의 본성으로 본다면 기형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중에는 천성적으로 지나친 재능이 나 도덕을 갖추고 있는 자가 있지만, 이것도 일종의 기형인 것이다.

더구나 그 기형을 남에게 강요 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 무릇 인간은 성명(性命)의 정(精), 즉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천성의 모습 그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다리는 짧지만, 그렇다고 긴 다리를 자르거나 짧은 다리를 억지로 늘이거나 하면 우부짖을 게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인의나 도덕의 틀에 인간을 가두어 두려는 것은 부자연을 범하는 것이다.


彼至正者(피지정자) 不失其性命之情(부실기성명지정)
故合者不爲騈(고합자불위변) 而枝者不爲岐(이지자불위기)
長者不爲有餘(장자불위유여) 短者不爲不足(단자불위부족)
是故鳧脛雖短(시고부경수단) 續之則憂(속지즉우)
鶴脛雖長(학경수장) 斷之則悲(단지즉비)

故性長非所斷(고성장비소단) 性短非所續(성단비소속)
性短非所續(성단비소속) 無所去憂也(무소거우야)
意仁義其非人情乎(의인의기비인정호) 彼仁人何其多憂也(피인인하기다우야)

저 가장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발가락이 붙어 있어도 네발가락이라 생각지 않고, 손가락이 더 있어도 육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길다고 그것을 여분으로 생각지 않으며, 짧다고 그것을 부족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오리는 비록 다리가 짧지만 길게 이어주면 걱정하게 될 것이다.

학의 다리는 비록 길지만 그것을 짧게 잘라주면 슬퍼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본래부터 긴 것을 잘라서는 안 되고, 본디부터 짧은 것을 이어 주어서는 안 되며, 여기에 대해 근심하고 두려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생각건대 인의란 사람의 참된 모습이 아니다. 덕을 갖춘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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