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왜국 일본을 미워하지만 과학실력만큼은 부럽다.

그레고리력에서는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존재하지 않는 주간이며 노벨상 주간이다. 한국에는 노벨상을 받고 싶기도 하고 일본 노벨상 수상자를 생각하면 잊고 싶은 주간이다.

노벨상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문학상 등의 시상이 이어진다.

일본은 올해 혼조 다스쿠(本庶佑·76) 교토대 특별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되면서 30명을 넘어섰다.

말썽많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을 빼면 한국은 0이다.

축구로 말하면 30:0이다.

한국은 교육 전반을 뜯어 고치고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한다.

지금 일본 과학은 우주에서 연일 실력을 뽑내고 있다.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는 9월 22일 우주 탐사선 ‘하야부사2’에 탐사 로봇 ‘미네르바 투원(Ⅱ-1)’ 2대를 지구에서 2억8000만 km 떨어진 소행성(小行星) ‘류구’ 표면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지구에서 32억 km 떨어진 목성 인근 소행성까지 독자적 기술로 날아간 것이다. 소행성 표면에서 이동 탐사를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업의 주체는 일본 국책연구소인 JAXA다. 그러나 이 탐사선을 소행성 궤도까지 정확한 시간과 속도로 집어 던진 ‘우주 발사체’를 만든 것은 일본 산업체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이다.

1895년 12월 10일 사망한 스웨덴의 발명가 겸 기업가였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에는 "내 재산을 성별·국적에 상관없이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등 분야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금으로 수여한다"는 노벨의 유언에 따라 1895년 제정됐다. 이후 1900년 노벨재단이 설립됐고 노벨이 기부한 유산을 통해 1901년부터 수여가 시작됐다. 11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은 지난해까지 개인 911명에게 수여됐다. 오랜 역사만큼 수상자 선정 관련 우여곡절뿐 아니라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노벨상에는 '노벨 수학상'이 없다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헌한 사람들에게 수여되는데 노벨상 수상 부문에 수학이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알프레드 노벨은 스웨덴 출신이지만 생애 대부분을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보냈다. 때문에 노벨의 사생활과 유언에 대한 해석은 나라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와 미국의 일부 학자들은 노벨이 유언장에 수학상을 넣지 않는 것은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인 미타그 레플러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노벨이 한 여인을 두고 레플러와 삼각관계에 있었는데, 수학상이 생기면 레플러가 첫 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수학 분야를 유언장에서 뺐다는 것이다.

노벨 수학상이 없는 이유가 노벨이 수학에 관심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노벨이 유언장에서 노벨상 수상자에 대해 '발명이나 발견을 통해 실질적인 인류 복지에 기여한 인물'이라고 명시한 것으로 볼 때 수학은 이론 위주의 학문으로 실용성과는 무관하다고 간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노벨 과학상 수상까지 25년이 걸리는 이유?

노벨상이 수여됐지만 시간이 흘러 '잘못된 수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살충제와 농약 등의 성분인 DDT다. 1941년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뮐러는 유기염소제인 DDT에 대한 특허를 내고 1년 뒤엔 1942년 DDT로 말라리아모기 등을 박멸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DDT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러 국가에서 사용금지 처분을 받았다.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안토니우 모니스의 뇌 전두엽 절제 시술 역시 부작용이 심하고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이 같은 사건을 겪고 노벨상 위원회는 수상 후보자의 연구 결과에 대해 검증 기간을 늘렸다. 1970년대에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업적을 내고 상을 받을 때까지 평균 10년 정도가 걸렸지만 2000년 이후에는 이 기간이 25년 정도로 길어졌다.

노벨상의 흑역사

학자들에게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노벨상이지만, 훗날 '잘못된 수상이었다'며 수상 자격 관련 재평가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살충제와 농약 등의 성분인 DDT다.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뮐러는 1941년 유기염소제인 DDT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1년 뒤인 1942년 DDT로 말라리아모기 등을 박멸한 공로를 인정받아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DDT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국가에서 사용금지 처분을 받게 된 데 따라 부정적인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안토니우 모니스의 뇌 전두엽 절제 시술 역시 부작용이 심하고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1918년 화학상을 받은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도 노벨상의 '흑역사'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로 꼽힌다. 암모니아 합성법을 발명한 하버는 화학비료로 세계 식량 생산 증대에 기여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때 독가스 생산에 앞장서면서 '화학무기의 아버지'로 불리며 인류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벨상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노벨상 수상자?

우리나라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해 인터넷에서 '한국 출신 노벨 과학상 수상자'라는 글이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는 물리학상이나 화학상, 생리의학상을 받은 전례가 없는데 왜 이런 글이 등장한 걸까?

노벨상 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수상자를 출생지에 따라 분류하면 한국은 2명으로 표시된다. 바로 김 전 대통령과 198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과학자 찰스 피더슨이다.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피더슨은 1904년 10월 3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해양 엔지니어였던 그의 아버지가 당시 영국이 관장하던 부산 세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더슨은 '크라운 에테르'라는 새로운 유기화합물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받았는데 수상 당시 국적은 미국이지만 부산에서 태어나 수상자를 출생지로 분류했을 때 한국으로 집계된다.

노벨상 수상을 거절한 사람들?

실제 노벨상을 거부한 사례는 지금까지 총 11건이다. 주로 독재정권의 압박 등 정치적인 상황 때문이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전부 금지한 탓에 1938년 화학상 수상자였던 리하르트 쿤, 1939년 화학상을 받은 아돌프 부테난트, 같은 해 생리의학상 수상자였던 게르하르트 도마크 모두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옛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와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역시 정부의 지시로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밥 딜런은 수상 직전까지 노벨상 위원회와 연락이 닿지 않아 수상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에 수상을 거절한 사람들이 있다.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소설 '닥터 지바고'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그는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첫 사례다.

'전쟁과 혁명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 닥터 지바고는 18개국에 출간됐고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지만 파스테르나크가 살던 소련에서는 자국의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담긴 이 소설을 거부했다.

소련은 그를 소련작가동맹에서 제명하고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조국을 떠날 수 없었던 파스테르나크는 추방을 면하기 위해 노벨상을 포기했다.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장 폴 사르트르는 자신의 의지로 노벨상을 거부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문학상 후보에 오를 때부터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데 수상자 발표 후에도 "노벨상 위원회의 평가를 인정할 수 없으며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습성"이라고 주장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수상을 거부한 이후 사르트르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변호사를 통해 뒤늦게 노벨상 상금이라도 수령할 수 있는지 물었다가 퇴짜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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