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은행권 대출의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규제 강화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벌써부터 규제 사각지대가 노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인의 모든 금융권 부채에 대한 상환능력을 따져 추가 대출을 제한한다는 DSR의 취지가 무색하게 대부업 대출이나 개인간(P2P)대출 정보는 시중은행이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규제 허점을 틈타 이들 시장에서 고금리 대출을 늘리는 이들이 늘어날 경우 가계부채 부실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대출 신청자의 기존 부채를 산정할 때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금, 카드론 등 모든 종류의 대출을 합산하는 DSR 규제를 시범운영해온 은행권은 이달 말부터 대출 규제 대상인 고(高) DSR의 상한선을 70%로 낮춰 본격적인 제도 시행에 들어간다.

시범운영 기간 중 100~150% 수준으로 설정됐던 고 DSR 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이제 한 해 동안 갚아야 할 대출원리금 총액이 연소득의 70%를 넘는 사람은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보험, 카드사 등 제2금융권에도 DSR 규제 시범운영 조치를 취하며 전방위적 가계대출 억제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폭이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계소득보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현재 8%대인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을 5%대로 낮추는 게 목표다.

문제는 규제 사각지대다.

현재 대부업 대출과 P2P대출 정보는 DSR 산정에 명확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해당 업권의 대출정보가 시중은행에 공유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이미 대부업체나 P2P업체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은행 대출이 있는 사람이 이들 업체에서 추가 대출을 받더라도 DSR 규제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예컨대 대부업체에서 1,000만원을 대출받은 사람이 은행권에서 3,000만원 신용대출 신청을 할 경우 은행 창구에선 기존 1,000만원 대출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DSR을 산정하게 된다. 자칫 대부업 등에서 발생한 가계부채 부실이 은행권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P2P대출의 DSR 규제 무력화 우려는 더 크다.

연 2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취급하는 터라 은행권과 차주가 크게 겹치지 않는 대부업과 달리, P2P대출은 연 10%대 초중반의 중금리 대출에 주력하고 있어 은행권과 차주가 상당 부분 겹친다.

은행권과 P2P대출을 오가며 가계부채를 늘리는 규제 회피 행위를 양산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더구나 P2P대출의 성장속도는 대부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누적대출액은 2조6,826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1조4,738억원)의 2배, 2년 전(2,918억원)의 10배 가까이 커졌다. 이 가운데 부동산담보대출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3,616억원)보다 267% 늘어난 9,661억원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한다. 지난해 이후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출 규제 시행으로 주택대출 수요 일부가 은행에서 P2P대출 시장으로 옮아갔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규제 사각지대를 막기 위한 관련 법규는 부재하다.
특히 P2P대출 중개업체는 규정상으로는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위의 ‘P2P대출 가이드라인’을 통한 행정지도만 받고 있다. DSR 규제에 막히거나 이를 우회하려는 이들이 몰려들어 연체나 부실 우려가 커져도 이를 방지할 법적 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대부업 및 P2P 대출정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시중은행뿐만 아니다.

대부업의 경우 대출정보를 공유하는 업권이 저축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뿐이고, 그나마 대출정보를 알리는 대부업체는 일부에 불과하다.

P2P대출 역시 저축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대부업체와 대출정보를 공유할 뿐이다.

두 업권 모두 대출정보 공개 의무가 없다 보니 정보 공유를 요구해온 일부 업권에만 대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한국신용정보원에 대출정보가 등록ㆍ공유된 대부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금융위 등록 대부업체(1,249개) 중 25%에 그친다. 이렇다 보니 시중은행은 물론이고 다른 업권에 강화된 DSR 규제가 적용되더라도 차주의 상환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 대출 총량 규제라는 본래 취지에 구멍이 생기는 셈이다.

이 같은 우려에 금융당국은 대출정보 공유 확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한국신용정보원과 대부업권을 상대로 대부업 대출정보가 DSR 산정 시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부업계에선 대출정보 공유가 늘면 이용자 수가 줄어들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실제 반영까진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한편에선 은행 및 주요 2금융권의 DSR 규제 강화로 인한 저소득ㆍ저신용자의 자금 경색을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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