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중금속 냄새 누명쓰고 기피대상된 은행(銀杏)나무(Ginkgo)의 비밀

올해 칠석(음력 7월7일, 양력 8월17일)은 남북 이산 부부 은행나무의 날이었다. 수나무는 서해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였다. 800여 년 전 홍수로 인해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에서 뿌리째 떠내려 와 어민들이 이를 건져다 심었다고 한다.

암나무는 황해도 `연안 은행나무(북한 천연기념물 제165호)'다. 남북 분단 전에는 양측 주민들이 서로 연락해 음력 정월 그믐에 맞춰 각각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를 재현한 민속행사를 연 것이다.

국내 최대 은행나무숲은 홍천 내면 광원리에 있다. 아내의 만성 소화불량에 이 지역 삼봉약수가 특효라는 효험을 믿고 30여년 전 인근에 정착해 심은 은행나무 2,000여 그루가 장관을 이뤘다. 제철인 10월에 이 숲의 빗장이 풀린다. 그 10월의 끝자락이다. 이문재의 시 `10월'을 되새기며 회자정리(會者定離)에 드는 발길을 향해 보자.

요즘 은행나무는 기피 대상이 됐다.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고 밟혀 악취를 풍기기 일쑤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진이 은행나무의 암수를 묘목 단계에서 가려낼 수 있는 DNA 분석기술을 개발했다.

아예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은행나무만 가로수로 심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은행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공기 정화 효과도 뛰어나 가로수로 제격이지만, 열매가 뿜어내는 고약한 냄새가 문제였다.

서울 방이역 주변의 은행나무길은 냄새는 물론 열매가 떨어진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은행나무 열매는 모두 암나무에서 열리는데, 이곳 은행나무는 2년 전 열매가 열리지 않는 나무로 모두 교체됐다.

동물처럼 암수가 다른 은행나무를 묘목 단계에서 구별할 수 있는 DNA 분석기술 덕분이다. 지금까지는 은행나무가 15년 이상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뒤에야 암수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손톱 크기의 은행나무 잎만 있으면 수나무 특유의 DNA를 확인해 1년생 묘목도 성별을 구별할 수 있다. 예전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효자 수출이었던 병아리 감별기술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가로수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은행나무

DNA 기술을 이용해 은행 열매의 악취는 제거하면서 가을 정취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맞춤형 가로수의 생산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살아 있는 화석, 전설의 신목, 수처작주의 목신. 장구한 생명력의 은행나무를 일컫는 수식어다. 지구에 수차례 빙하기가 들어 무수한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 아무리 오래된 나무도 줄기 밑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니 인간 수명에 비춰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1)화석나무, 숲의 소방수 역할
(2)영어 명칭은 일본놈들이 등재한 말
(3)암나무 숫나무가 있는 나무
(4)깊은 밤 꽃이 피는 나무
(5)스스로 몸을 지탱하는 가장 높게 자라는 나무중 하나
(6)진혼, 정적, 장엄, 장수, 정숙 -꽃말
(7)중국이 원산인 나무
(8)공손수(公孫樹)·,행자목(杏子木).압각수(鴨脚樹)라 불리는 나무
(9)한국의 정신적 문화재인 나무

은행은 ‘은빛 살구’를 의미하는 한자이다. 이 한자는 이 나무의 열매가 살구나무 열매를 닮아서 붙인 것이다. 은행은 송나라 때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에 제공하는 조공품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 풀이
‘압각수(鴨脚樹)’는 잎이 오리발과 닮아서 붙인 이름이다.
‘공손수(公孫樹)’는 열매가 손자 대에 열린다는 뜻이다.

백과(白果)는 열매의 껍질을 벗기면 흰색이 드러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식물도감에 등장하는 킹쿄는 린네가 은행의 일본어 발음 긴난(Ginnan)을 잘못 읽고 붙인 이름이다.

한국의 서원, 성균관, 향교, 유학자들의 거주 공간 등지의 은행나무는 단순히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한국의 주요한 정신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다.

은행나무는 전통적으로 나무에 열매가 열리는지의 여부로 암수를 감별해 왔는데, 은행나무는 30년 이상 일정 기간 이상 자라야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어린 묘목의 암수 감별이 어려웠다. 까다로운 암수 감별 탓에 가로수로 암나무를 심어 악취피해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6월 산림과학원이 수나무에만 있는 유전자인 SCAR-GBM을 발견했고, 1년 이하의 묘목의 암수 감별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농가에는 은행 채집이 가능한 암나무를, 거리에는 악취가 풍기지 않는 수나무를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작권자 © 청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