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스승은 있나?아니 스승은 둘째치고 선생으로라도 대접해 주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다 같다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다.

‘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사가 19세기 교실에서 가르치고 18세기 관료가 지배한다.'

청소년들 교육 부모가 망친다.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진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첫번째 교육자인 부모에게 있다. 그동안 부모들이 아이를 어떻게 대했으며, 어떤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아야 한다.

부모들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역사람, 혈연이 아닌,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세계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

혼내기, 꾸중하기, 벌내리기가 과연 훈육일까?
돈으로 해결하기, 빽으로 돌봐주기, 세습과 상속하기, 내 자식만 잘해주기가 교육일까?

훈육과 칭찬의 기발한 기법이 따로 있는 것일까?

낳기만 하고 사회와 학교에 내던진 가정교육없는게 올바른 교육일까?

자기 성찰을 할 때 올바른 훈육이 된다. 과도한 칭찬, 과도한 훈육 다 안 좋다. 적절하게 아주 조금 하는 것이 좋다. 현대인은 말로 하는 훈육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훈육이 절실한 때다.

`지구에 온 이방인'인 아이들에게 `안내자'로서 부모들이 제 역할을 해야한다.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폭력은 권력자인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해결된다. 한국 청소년들의 문제는 결국 어른들의 문제다.

요즘 교사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한국에서나 하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 돼간다.

요즈음 선생님들은 별의별 민원을 다 받는다.

운동장에서 노는 대신 복도에서 마음껏 뛸 수 있게 해달라는 학부모도 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모기에 물리면 "애 모기 물릴 때 뭐했느냐"고 성화다. 모든 민원이 교사를 상대로 벌어진다.

교사는 아이 몸에 상처부터 살핀다. 책임을 면하기 위한 일이다. 고등학교에는 체육 수업 하지 말라는 민원이 들어온다.

공부할 아이들 왜 피곤하게 땀 빼느냐는 거다. 올해 서울대 건강사회정책연구실이 조사해보니 고등학교 체육 수업 권장 기준인 주 3시간을 지킨 학교는 25%에 그쳤다.

한국에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놀지 못하게 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아이가 다치면 학부모 항의를 받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한 초등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아이가 넘어져 찰과상을 입자 학부모가 교사를 고소했다. 초·중등 교육은 아이들 책 읽히고 운동시키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아이 무릎 까졌다고 교사를 고소하고, 그게 무서워 체육을 안 가르치면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다.

캐나다 초등학교 점심시간은 밥 먹는 데 20분, 노는 데 40분으로 나뉘어 있다. 아이는 밥 먹은 뒤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마음껏 뛰논다. 축구·야구·하키·배구 같은 운동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스웨덴에선 점심시간에 아예 교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모두 운동장에 내보낸다. 프랑스 중학교에선 체육 수업이 주 4시간으로 프랑스어·수학과 함께 가장 많다. 선진국에선 거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공부는 예로부터 지덕체의 결합이다.
각종 연구 결과도 '뛰어놀아야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재작년 실험해 보니 일주일에 한 시간 마음껏 뛰어논 아이는 공부에 대한 흥미와 태도가 6%포인트 올랐다. 특히 하위 10% 학생은 21%포인트나 올랐다. 정상 수업한 아이는 변화가 없었다.

존 레이티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작년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운동 기반 교육이 강화되는 추세인데 한국은 역행하고 있다"며 "매일 최소 40분 운동을 해야 피와 산소가 뇌로 많이 공급되면서 학습 능력이 좋아진다"고 했다.

스포츠는 신체를 단련하는 동시에 인간관계를 비롯한 사회성 훈련에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은 스포츠를 통해 규칙과 명예, 승복, 협동과 희생의 가치를 깨닫는다.

선진국에서 다른 어떤 과목보다 체육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 청소년은 안경 쓰고 휴대폰으로 게임하는 것이 표본적인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학교 운동장이 빈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부모 증명서를 발급하고 돼먹지 않은 부모의 자식은 학교에서 받지 말자. 학교에 모든걸 떠맡기고 지들은 개차반으로 살면서 학교만 탓하는 부모는 문제다. 학교도 이제 서서히 없앨 때가 됐다. 모든 결사와 모임 비리의 근원이 학교가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교육과 선생님 생활이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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