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지금 세상은 믿을게 하나도 없다. 지금 가진 재산, 그 자리, 권력, 명예 등을 믿을수가 없다. 끈, 빽, 줄, 뒷배 등 불법, 편법, 세습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 교무부장이 시험문제를 빼내 딸 쌍둥이에게 시험지를 전달해 성적을 조작하고 상향시킨 `숙명여고 사태`는 실제 문제 유출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2일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총 다섯 차례 정기고사 시험문제와 정답 유출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과 쌍둥이 딸들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수사 결과 쌍둥이 자매가 만든 `암기장`에서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전 과목 정답을 메모해둔 사실도 드러났다.

문제 유출 의혹은 지난해 1학년 1학기에 각각 문·이과 전교 59등, 121등이던 전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들이 올해 1학기에 나란히 문·이과 1등을 차지하면서 불거졌다.

사교육 1번지 강남 대치동에서 자매가 동시에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성적을 올리기는 힘들다는 학부모들의 합리적 의심이 묻힐 뻔한 사건이다.

강남의 내신 경쟁을 아는 학부모라면 "4시간만 자고 공부했다"는 전 교무부장의 해명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올해 중간·기말고사 기간 야근을 하며 혼자 교무실을 지킨 점, 쌍둥이가 화학 시험에서 출제 교사가 잘못 표기해 제출한 정답을 적은 점 등 여러 증거 정황이 드러났지만 아버지와 딸들은 끝까지 부인했다.

엇나간 자식 사랑이 결국 파국을 불렀다.

숙명여고 사태는 내신 관리의 총체적 부실, 수시 불공정성, 불투명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얼마 전 광주의 한 고교에서 학부모가 행정실장과 짜고 시험지를 빼돌린 사건도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교사인 부모가 부정행위에 가담하고 교육 윤리를 추락시켰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숙명여고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강남 한복판에서 내신 비리가 터졌으니 다른 곳은 오죽할까 싶다.

문제는 내신 성적, 비교과, 논술 등이 전형 요소인 수시 비중이 2019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무려 76.2%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서도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세다. 내신이 대입과 직결되는 시대에 이렇게 성적, 수행평가 등이 엉망으로 관리되고 있다니 전국 학부모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능 출제위원들도 몇 달째 격리돼 있다가 시험이 시작돼야 풀려나는데 대입이나 마찬가지인 내신 시험지 관리를 그 학교에 자녀를 둔 교사가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


수시는 "수능이란 단 한 번의 시험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주장, "시험으로 학생을 일렬로 줄세우는 것이 반인권적이고 후진적"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도입됐다.

하지만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수시 비중 증가로 중간·기말고사가 사실상 대학 입시가 되다 보니 교실은 피 말리는 내신 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공정하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수시 선발이 선의가 있더라도 내신 조작, 스펙 위조, 컨설팅회사가 쓴 거짓 자소서 등 비윤리적 행위들을 가려내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번 사태가 터진 후 숙명여고의 대응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지만 학교 측은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에 속 시원한 해명을 내놓기보다는 은폐하기에 바빴다. 교무부장 개인의 일탈이라면 그를 조사하고 쌍둥이의 모의고사 성적, 교사들의 자매에 대한 평가 등을 종합하면 내부에서 충분히 진실을 밝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 측은 이들을 감쌌고 교사들은 침묵했다. 그러니 학부모들이 "10년 전 이 학교 교장·교감·교사 자녀들 내신까지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아닌가.

숙명여고 내신 비리는 `학종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정시는 `정말로 어려운 시험`, 수시는 `매우 수상한 시험`"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수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는 의미다.

`차라리 수능 때가 나았다` `정시비중을 확대하자`는 얘기도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학종 불공정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론화 끝에 `정시 30% 유도`라는 방안만 내놓고 학생부 개선은 일부만 손보는 데 그쳤다.

교육감 출신 전임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이런 입시제도를 오락가락하다 무러났다. 지금 교육부총리는 인수인계는 제대로 받았는지, 국회에 신고하고, 여기저기 어린이집하고 유치원 사태 해결하느라 점검할 시간은 있었는지 알길이 없다.

정시 비중을 늘리든지 평등, 공정, 정의 등 이 정부의 슬로건에 맞게 학종을 전면 개선해야한다. 수시를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입시 괴물`들만 키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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