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체코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세 가지 일이 보였다

(1)체코 대통령이 없다 -쉽게 말하면 정상회담을 못했다.

체코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통상 외국 정상이 방문하면 첫 날 혹은 둘 째날이라도 정상회담을 열거나 비공식 만남을 갖는게 관례지만 체코 대통령은 편지 한 통을 보내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오래 전 예정된 이스라엘 국빈방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체코를 떠나 있어 문 대통령을 직접 만나지 몫하는 데 대한 미안함으로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2)원전수출

한국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펼치면서 수출은 하겠다는 이중잣대적 정책이 실현될지 의문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진행된 안드레이 바비쉬 총리와의 회담에서 현지 원전 수주 회담을 펼쳤다. '국내 탈원전-해외 원전 수출' 투트랙 전략을 취해온 문 대통령이 체코에서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을 지 여부가 향후 관건이다.

체코 원전 수주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프랑스-일본 컨소시엄, 미국 등이 경쟁하는 모양새다. 특히 체코가 러시아와 맺어온 특수관계가 가장 큰 변수라는 평가다. 현재 체코가 보유한 원전 6기 모두 러시아가 만든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에 있어 체코 원전 수주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국내에서 탈원전을 60~70년에 걸쳐 진행하는 동시에, 해외에서 원전 수주를 해 '탈원전의 경제학'을 실현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이번에 세 번째 체코를 방문해 현지 인사들을 접촉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해외에서 수주 소식이 들려야 국내 탈원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지난 2월 딜로이트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진행한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예상 원전산업 종사자(3만명)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폴란드 등에서의 원전 수주가 필수적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해외에서 원전을 수주하는 게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원전을 더이상 짓지 않고 있는 프랑스와 미국이 각국에서 원전을 수주해왔다는 사례를 강조하고 있지만, 의구심은 여전하다.

이 의구심을 푸는 것은 결국 '실적'이다.

(3)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 )에서의 기도

프라하성 중앙에 있는 제 3정원에 있는 성당으로 블타바 강 너머에서 보일 만큼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며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570m 길이에 130m의 폭으로 무려 7만㎡의 면적을 가진 프라하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옛 성으로 보헤미아의 왕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궁이었으며 지금은 체코공화국 대통령의 거처다.

프라하성은 프르셰미슬(Přemyslid)왕조 시절인 870년에 세운 성모마리아교회에서 시작되었다. 10세기 들어 보헤미아 공작 브라티슬라프 1세(Vratislaus I)와 그의 아들 성 바츨라프(St. Wenceslas) 시절에 성 게오르게 대성당과 성 비투스 대성당을 지었다.

800년부터 1306년까지 보헤미아 지역을 다스린 프르셰미슬왕조는 리부셰공주와 결혼한 농부 프르셰미슬이 열었다는 전설이 있다.

1198년 오타카르1세는 보헤미아를 신성로마제국 내의 세습왕국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보헤미아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것은 바츨라프의 조부 보리보이 공작시절이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을 지은 바츨라프는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열성적으로 노력하다가 이교도인 동생 볼레슬라프1세에게 살해되었다. 바츨라프는 사후에 보헤미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보헤미아의 위대한 통치자 가운데 하나인 오타카르2세(Ottokar II 1253~78 재위)는 성을 요새화하는 한편 거주할 목적으로 왕궁을 재건하였다.

14세기 들어 카를4세(Charles IV) 역시 성곽을 강화하게 성 비투스 대성당을 대체할 고딕 양식의 교회를 짓기 시작했는데, 이 교회는 거의 6세기가 지나서야 완공되었다.

1419년에서 1434년까지 이어진 후스 전쟁도 한몫을 하여 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성이 비어있었다. 보헤미아전쟁(Bohemian Wars) 혹은 후스파 혁명(Hussite Revolution)이라고도 하는 후스전쟁은 보헤미아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한 얀 후스를 따르는 사람들을 로마 가톨릭교회에 복속시키려는 교황이 군주들을 규합한 십자군을 다섯 차례나 파견하여 벌인 전쟁이다.

보헤미아왕국의 체코 사람들 대부분이 후스를 추종하는 공동체에 소속되었는데, 얀 지슈카가 이들을 이끌어 다섯 차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485년부터 라디슬라프 2세가 성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왕궁에 커다란 블라디슬라프홀을 추가하였고 북쪽에는 방위탑을 세웠다. 1541년 큰 화재가 발생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불태웠다. 합스부르크왕조 시절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궁전을 세워졌다. 지금 남아있는 궁전의 건물들이다. 프라하성의 왕궁을 사용했던 루돌프2세는 스페인홀을 세워 소장예술품들을 전시하였고, 궁전의 북쪽 건물을 지었다. 1618년 시작한 30년 전쟁 동안 프라하성은 심각하게 파괴되었고, 18세기 후반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 시절 성의 재건이 마무리되었다.

9세기에 바츨라프 1세가 교회 건물을 지은 것이 성 비투스 대성당의 원형이고, 이후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14세기 카를 4세가 고딕 양식으로 새로 짓기 시작하면서 갖추어진 것이다. 건설에 착수한 뒤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후스 전쟁이 일어나면서 그나마 중단되었다가 20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1344년 카를 4세 때 착공하여 1929년에야 완공되었다. 최초의 설계자는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로, 그가 1352년 숨을 거두자 당시 23세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뒤를 이었고, 이후 파를러의 아들과 또 다른 건축가들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갔다.

공사는 후스(Jan Hus)의 종교개혁 때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 16세기 중엽 르네상스식 첨탑이 완공되고, 17세기에 양파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1753∼1775년 사이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신고딕 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성당의 규모는 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 첨탑 높이 100m에 이른다. 정문 바로 위를 장식한 지름 10.5m의 ‘장미의 창’이 인상적이다.

성당 안쪽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제작한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이다.

성당의 중앙에는 16세기의 묘가 있는데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디난트 1세와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주제단의 뒤쪽에는 7개의 예배당이 있고 그중 중앙의 마리아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아름답다. 제단 오른쪽에는 성 얀 네포무츠키(Jan Nepomucký)의 묘와 2톤의 은을 녹여 만든 조각상이 있다.

바츨라프의 유물이 전시된 ‘성 바츨라프 예배당’은 성 비투스 성당의 필수코스로 손꼽힌다. 바츨라프는 보헤미아의 수호 성인으로 세계 최대의 사파이어가 박혀 있는 왕관은 금으로 만들어져 보석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것이며 황금색으로 옻칠을 한 예배당 벽에도 석류석, 자수정, 에메랄드 등 1,372개의 보석이 박혀 있다.

성당 지하에는 카를 4세, 바츨라프 4세 등 왕과 주교들의 묘가 있다. 첨탑에서는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체코 공화국 

체코의 정식 국가 명칭은 체코공화국(The Czech Republic)이다.

체코어로는 체스카 레푸블리카(Česká republika)다.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연방 해체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독립하였다.

체코의 국명은 고대 동유럽으로부터 이주하여 중부 보헤미아 지방에 정착한 ‘체코’족에서 유래하였다.

국토의 면적은 7만 8864㎢로 한반도의 1/3이며 평지와 산악의 비율이 7대 3이다. 독일, 폴란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에 둘러싸인 중부유럽의 내륙국으로 북위 48°~51°, 동경 12°~19°에 위치한다.

봄과 가을은 한국 날씨와 비슷하며, 여름은 한국보다 습도와 온도가 낮고 겨울은 흐린 날씨가 계속되면서 눈과 비가 자주 내린다.

민족 구성은 체코인(95.8%), 우크라이나인(1.3%), 슬로바키아인(0.7%), 베트남인(0.6%), 폴란드인(0.2%)이며 기타 민족이 1.4%를 차지한다.

수도는 프라하로 2008년 현재 약122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요 지방도시로 36만 명이 거주하는 브르노(Brno), 34만 명이 거주하는 오스트라바(Ostrava) 등이 있다. 언어는 체코어이며 종교는 가톨릭이 39.2%, 무신론자가 40%, 기타 종교가 11.2%이다.

국경일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 선포일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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