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2월 11일은 한국의 현재 입장을 결정했던 얄타회담이 끝난 날이다. 지금 소치 동계올림픽처럼 한국민중들이 얄타라는 지명도 모를때 강대국들은 한국의 분단을 가져올 위험한 결정을 주고 받았다.

1945년 2월 4일 부터 2월 11일까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Spender Churchill), 그리고 소련의 국가원수였던 스탈린(Josef Stalin), 이 세 사람이 만난 당시 소련, 크리미아 지방의 소도시였던, 현재 우크라이나의 얄타

이 때 전쟁의 판도에서 핵심적인 국가였던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이 회담을 가졌는데, 신경과 전문의인 미국의 제임스 툴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이 회담에 참여했던 세 사람 모두 치매를 앓아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영국 BBC에서 2004년 7월 7일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 헤이우드병원 정신과 전문의 엘 님 박사는 최근 영국왕립정신과의사협회 연례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수백만명의 옛 소련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스탈린은 몇 차례 뇌중풍 발작으로 치매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님 박사는 2차 대전 말기인 1945년 2월 얄타에서 스탈린과 만나 한반도 문제 등 전후처리 문제를 협의했던 루스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역시 치매에 걸려 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당시 회담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모습을 볼 때 치매가 상당히 진행됐으며 처칠도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후 치매로 세상을 떠나 얄타회담 당시 이미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됐다는 것이다.

덧붙여 “치매는 초기부터 기억력뿐 아니라 의사결정, 방향감각 등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높은 지적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치매에 걸려 직무수행 능력이 손상돼도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행동한다”라는 설명을 통해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세 사람의 치매 가능성을 시사했다.

세 지도자의 사인(死因)은 주장을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했다.
처칠은 1965년1월 뇌졸중으로, 스탈린은1953년3월 뇌경색으로, 마지막으로 루스벨트는 1945년 4월 뇌출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한국 문제는 이 회의에서 아주 지엽적인 대화로 끝난 정도였으나,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못했던 세 노인을 앞세운 어떤 음모가들이 우리의 운명에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장래에 대해 ‘적절한 시기’를 거쳐 독립시킨다고 선언했고,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5개년 이내의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을 시킨다고 합의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의 ‘신탁통치안’이 3개국 수반 사이에서 처음 논의된 것은 얄타회담에서였다.

한반도에 관한 논의
제2차 대전 후의 패전국과 참여국에 관한 논의에 한반도의 신탁통치 등이 거론되었다. 미국(美國)ㆍ영국(英國)ㆍ소련(蘇聯) 정상들이 모여 태평양 전쟁에서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을 결의하였다.

이는 대 일본전에 소련을 끌어 들여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전후 유럽의 향후 국경문제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문제가 거론되었다.

미국은 필리핀의 경우를 예로 들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소련에 제안하였고, 소련의 스탈린은 이에 대해 신탁통치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답하였다. 미국ㆍ영국ㆍ소련은 한반도에 남아 있는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킨다는 명분으로 미국과 소련은 군사분계선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얄타회담 내용을 근거로 1945년 8월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에 각기 군대를 진주시켜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실시되었다.

얄타회담과 관련한 유머를 보면 당시의 입장을 알수 있을 것이다.

A tale rippled through a Russian POW camp during the war: At one of the Yalta meetings, Churchill, Roosevelt, and Stalin were talking about their dreams. Churchill: “I dreamed last night that God had made me Prime Minister of the whole world.” Roosevelt: “I dreamed that God had made me President of the whole world.” Stalin: “How could you gentlemen have such dreams? I didn’t dream of offering you those positions!”

2차대전 때 소련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온 이야기. 얄타회담 때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이 그들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했단다.

처칠 - “간밤 꿈에 하느님이 나를 전 세계의 수상으로 임명해 주시더라고.”

루스벨트 - “난 하느님이 나를 전 세계의 대통령으로 임명해준 꿈을 꿨어요.”

스탈린 - “두 분께서 어찌하여 그런 꿈을 꿀 수 있단 말입니까? 난 두 분께 그런 자리를 내 줄 걸 꿈조차 꾸지 않았는데요!”

1945년 2월 4일~2월 11일 지금의 소련 흑해 연안에 있는 얄타(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미국·영국·소련의 수뇌자들이 모여 나치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그 관리에 대해 의견을 나눈 회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주요 추축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 왕국이 항복을 하고 나치 독일이 패전할 기미를 보이자 연합국의 지도자들이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고 그 후를 의논하기 위하여 크림 반도에 위치한 얄타에 모여서 회담을 하였다.

각국의 수뇌자로는 미합중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소비에트 연방의 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 등이 있다.

이 회담에서 회담자들은 패전 후 나치 독일을 소련·미국·프랑스·영국 이렇게 4국이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며, 연합국은 독일인에 대하여 최저 생계를 마련해 주는 것 이외에는 일체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나치 독일의 군수산업을 폐쇄하거나 몰수한다고 선언하였으며, 전쟁의 주요 전범들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릴 국제재판에 회부하기로 합의하였고, 전후 배상금에 대한 문제는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여 위원회에 위임하기로 하였다.

이 회담에서 폴란드에 대해서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서 규정한 폴란드 동부 영토 대부분을 소련 영토에 병합하기로 합의되었고, 한편 폴란드에게는 동독의 일부 지역을 대신 주기로 하였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각각 폴란드 동부 영토 일부를 얻게 되었다.

저작권자 © 청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