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빨갱이의 어원을 찾아

청주일보l승인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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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세종=청주일보】김홍순 =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멸칭 중 하나가 빨갱이다. 본래 당원이나 유격대원을 뜻하는 파르티잔(partisan)에서 빨치산과 빨갱이가 연유한다는 것이다.

사실 빨갱이라는 용어는 공산주의자들 스스로가 만든 명칭이라 볼수도 있다.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좌익 세력이 상징으로 사용한 깃발도 '적색', 소련 군대의 이름 역시 적군(赤軍), 좌익 민중가요에도 '적기가'라는 노래가 있다.

소련 등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들의 국기도 낫과 망치 같은 상징이 그려져 있는 붉은 바탕의 깃발이었다. 이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우익 계열과 공산주의자들의 테러 활동, 게릴라 활동 등으로 피해를 입어 반공주의자가 된 사람들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증오를 담아 그들을 '빨갱이'라고 불렀다.

'독립신보', 1947년 9월 12일자.

요사이 유행하는 말 중에 '빨갱이'라는 말이 퍽 유행된다. 이것은 공산당을 말하는 것인데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빨간 놈이 있고 수밀도 모양으로 거죽도 희고 속도 흰데 씨만 빨간 놈이 있고 토마토나 고추 모양으로 안팎 속이 다 빨간 놈도 있다.

어느 것이 진짜 빨간 놈인 것은 몰라도 토마토나 고추 같은 빨갱이는 소아병자일 것이요.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붉은 것은 기회주의자일 것이요. 진짜 빨갱이는 수밀도같이 겉과 속이 다 희어도 속 알맹이가 빨간 자일 것이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 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 자들이 민족분열을 시키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의 ‘빨갱이’ 유래 풀이

“빨갱이는 북한의 붉은 기나 공산혁명을 상징하는 색깔 빨강 혹은 적화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빨갱이’는 항일 유격대원을 지칭하는 빨치산에서 나왔다. 당시 항일 유격대원 가운데 공산주의 신봉자들이 많았고, 거기서 이어져 한국전쟁 때 공산당 유격대원도 빨치산으로 부르게 됐다. 이 말이 나중에는 공산주의자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됐다.”(<세상을 바꾸는 언어>)

‘빨갱이의 탄생’을 쓴 김득중
"빨갱이를 죽어 마땅한 비(非)국민으로 모는 것은 1948년 여순사건 때 양민 학살에서 생겨났다"

‘빨갱이의 탄생’의 서평으로 정해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은 2009년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해방과 더불어 남한 내부에선 친일파를 포함한 반공 우파세력과 좌파세력 간에 새 정부 수립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전개됐다”며 “이승만 정부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좌파세력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빨갱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어 빨간색을 뜻하는 '아카(あか)'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경찰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일종의 정치범수용소와 비슷한 곳에 가둬넣고 사상 전향 교육을 시켰는데, 이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명부에 빨간 점을 찍어 놓고 '아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렇듯 자주독립을 꿈꾸던 민족주의자들의 참된 반공주의가 아니라,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이용한 빨갱이 몰이는 신탁통치 오보사건 이후로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요즘 같은 의미의 ‘빨갱이’ 단초는 일제강점기 말 이승만의 편지에서 발견된다.

1942년 10월10일 미국 당국에 광복군 편입을 제안한 이승만의 편지는 “호놀룰루에서 얼마 전 이곳에 도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전경무에 따르면, 그의(한길수 지칭) ‘조직’은 50명이 못 되는 한국 ‘빨갱이들’ 이상은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자신과 반대되는 조직을 빨갱이로 몰아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길수는 특별히 공산주의와 연관 기록이 파악되지 않는다. 이승만의 이러한 인식이 한국 사회 ‘빨갱이’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 상징 언어로 ‘빨갱이’가 대두한 것은 해방정국, 이승만의 등장부터다.

‘빨갱이’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미 군정과 친일파 반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 씌우는 주술로 쓰였다.

친일파 청산을 거론해도, 외세 배격을 주장해도 ‘빨갱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탄압받고 죽임을 당했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 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 자들이 민족분열을 시키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독립신보, 1947·9·12) 그래서 ‘이 자들’에게는 백범 김구도 빨갱이가 되었다. “이승만은 국민을 좌와 우로 나누어 비국민을 제거 대상으로 보고 각종 단체와 민주인사까지 빨갱이로 몰아서 정치보복과 학살을 자행했다”(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아마도 이런 역사적 자취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 문화’를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로 강조한 배경일 터이다.


해방 이후 과일로 본 빨갱이 논쟁

한국이 왜국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된 이후 이 땅에는 3종류의 빨갱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수박 빨갱이, 토마토 빨갱이, 사과 빨갱이다.

사과 빨갱이는 겉으로는 빨갱이지만 속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고, 토마토 빨갱이는 겉도 안도 빨갱이인 사람이다. 수박 빨갱이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는 빨갱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당시에 가장 무서운 것이 수박 빨갱이였다고 말한다. 6·25가 터졌을 때 이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세상과 교회사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교회가 로마의 그 모진 박해 시대를 지나오는 과정에서 토마토 빨갱이나 사과 빨갱이와 같은 신앙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시대가 평탄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에는 교회에 나와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잘 한다. 그런데 시험과 박해가 있게 되면 신앙을 저버리고 믿음의 신자들을 고발해 교회에 많은 피해를 입힌다.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소위 배교자들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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