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동해안의 봄철은 악몽이다.

2000년대 들어서만 봄철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10건, 이로 인해 불탄 산림만 여의도 면적의 90배를 넘는다.

고온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부는 지역의 특성 탓이다.

하지만 이처럼 반복되는 재해에 대한 대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게 아니라 국회의 무능으로 예산이 없어지거나 현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강원소방본부가 계속해서 요청해온 특수헬기 도입은 국회에 발목을 잡혀 무산됐고 이번 화재 피해를 키운 요인이 되기도 했다.

산불진화에 필수적인 대형 소방헬기 턱없이 부족.

이번 화재에 동원된 초대형 소방헬기 S-64E 기종은 한번에 8톤가량의 물을 실어 나를 수 있지만 국내에 3대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군 등에 110여대의 소방헬기가 있지만 대부분 중·소형으로 S-64E 기종에 비해 담수량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 화재처럼 강풍이 부는 등의 기상상황에서는 운행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강원소방본부는 지난해 초속 25미터 강풍에도 뜰 수 있는 카모프 기종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국회에서 가로막혔다.

카모프 기종이 대당 250억원에 달하는 데다, 국내 산불집중기간이 비교적 짧다 보니 헬기가 많을수록 연중 가동률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방 헬기 예산 67억이 잡혔다가 국회논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이런 가운데 강원도에서는 해마다 봄철이 되면 대형 화재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3월28일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 인근 야산에서 시작된 불은 이틀 동안 축구장 50개 면적과 맞먹는 산림 40ha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번 화재로부터 꼭 14년 전인 2005년 4월4일에는 양양 등지에서 산불이 발생해 문화재로 등록된 낙산사가 소실됐다. 이때 3일간 이어진 화재로 산림 973㏊가 잿더미가 됐고, 건물 250여채가 불에 탔다.


신속한 사후 대응과는 달리 허술한 초기 대응과 노후 장비 등 재난 대응 시스템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산불진화용 헬기도입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허술한 전신주 관리, 턱없이 부족한 산불대응 인력 등 수십년간 지적된 해묵은 문제점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노후장비로 아날로그 식 대응 여전

지난해 초속 25m의 강풍 및 야간ㆍ혹한 속에서도 운항이 가능한 러시아제 카모프 대형헬기 구입을 위한 국비 예산확보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봄철 산불이 연례행사가 됐음에도 현재 강원소방본부가 보유한 헬기는 구조용 소형헬기 2대뿐이다. 전국적으로 산불진화에 가용할 수 있는 헬기는 산림청 소속 47대와 지자체가 민간인으로부터 임차한 66대 등 157대지만, 이마저 정비에 들어가는 헬기가 적지 않아 화재 진화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특히 이번처럼 해가 지고 난 뒤 산불이 발생했을 때 출동할 수 있는 헬기는 사실상 전무하다.

일각에서는 야간침투비행 능력을 갖춘 일부 군 헬기를 활용하면 야간 진화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작전용 헬기를 용도에 맞지 않는 곳에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때문에 초기 진화에 실패한 이번 산불이 고성 천진해변과 속초시내 등 두 갈래로 퍼졌음에도 ‘아날로그 식’ 대응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산골마을인 강릉 옥계의 경우도 펌프차량 등 노후장비와 주민들로 이뤄진 의용소방대로는 파죽지세의 불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속절없이 방어선이 무너지며 강릉은 물론 동해 망상까지 잿더미가 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수차례 재난 겪고도 산불 감시 인력 그대로

매번 반복되는 산불 감시 및 진화인력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이번 산불 진화의 숨은 영웅으로 ‘산불재난 특수진화대’가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처우는 형편이 없다.

특수진화대는 산림 분야의 전문 소방관으로 산림청이 선발해 운영한다.

산불이 나면 국ㆍ사유림을 가리지 않고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고 가장 힘들고 위험하다는 야간 진화 작업에도 동원된다. 이번 산불 현장에도 전국 특수진화대원 330명 중 절반이 동원됐다. 이들은 강풍에 헬기도 뜨지 못 하는 상황에 가장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 불길을 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일당이 10만원에 불과한 10개월짜리 비정규직 노동자다.

주휴수당과 같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법정수당만 있고 다른 수당은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1년마다 새로 모집돼 늘 고용불안 상태에 놓여 있다.

때문에 이번 산불을 계기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불 특수진화대의 전문성을 키우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분명하다”면서 산림청 예산 증액을 과제로 제기했다.

이러다 보니 가깝게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영동지역에서만 106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 축구장 1,800개에 해당하는 산림 1,263㏊를 잃고도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산불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이번 같은 재난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전 전신주 유지ㆍ관리도 허술

국가재난사태까지 선포된 고성 산불의 발화 원인이 토성면 원암리 주유소 건너편 전신주로 잠정 확인되면서 이를 관리하는 한국전력공사의 허술한 유지ㆍ보수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풍에 날린 나뭇가지 등 이물질이 전신주에 설치된 개폐기의 연결전선에 닿아 강한 불꽃이 생겼고,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게 한전의 원인 분석이다.

피복이 오래 됐다면 전선에 전기가 통하는 물질이 달라붙었을 때, 불꽃이 튈 수 있다는 한전의 원인 분석 자체가 스스로 배전시설 관리를 소홀히 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현재 한전의 개폐기 등 배전을 유지ㆍ보수한 집행실적은 1조1,524억원으로 오히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2,386억원)나 줄었다.

자칫 대형 화재를 부를지 모를 설비 관리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손 교수는 “산불 예방을 위해선 전선을 땅에 묻는 지중화 작업이 필수적이지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노후설비 교체 등 배전시설 관리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불원인 조사 본격화와 처벌

산림보호법상 과실로 인한 산불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정도는 약하다. 사형에 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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