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한국 등 8개국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 예외 연장 안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조치와 관련, 한국 등 8개국에 대한 한시적 제재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5월2일 0시를 기해 이란산 원유수입이 전면 금지될 전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오늘 미국은 현 이란 원유 수입국들에 대한 추가 제재유예조치(SRE·significant reduction exceptions)를 다시 발효하지 않을 것을 공표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이란 핵 합의' 탈퇴에 따라 자국의 대(對) 이란제재를 복원하면서 한국, 중국, 인도, 이탈리아, 그리스, 일본, 대만, 터키 등 8개국에 대해 180일간 '한시적 예외'를 인정한 바 있다.

대신 미국은 이란산 원유수입량을 지속해서 감축하라는 조건을 걸었으며, 감축량을 토대로 6개월마다 제재 예외 인정 기간을 갱신하도록 했다.

이들 8개국 가운데 그리스와 이탈리아, 대만 등 3개국은 이미 이란산 원유수입을 '제로'(0)로 줄인 상태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예외적 허용 조치 연장을 위해 미국 정부와 협의를 벌여왔다.

국내 업체들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이란산 초경질유(콘덴세이트) 수입이 중단되면 생산성과 수익성이 떨어지는 등 단기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치는 지난 8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를 외국 테러조직(FTO) 지정으로 지정한데 이은 대이란 최대 압박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미국이 외국 정부 소속 기관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 정부는 유가 급등 등 석유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주요 원유 생산국들과의 협의를 통해 이들 8개국의 원만한 과도기 이행을 돕고 원활한 원유 공급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나, 실제 시장에 어떤 여파가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 이면에는 OPEC과 이란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미국의 배짱에는 급속히 증가한 셰일오일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저금리로 대규모 투자를 한 미국은 셰일오일 증산에 힘입어 이미 세계 1위 산유국이 됐다.

셰일 에너지는 국제 질서의 지각 변동까지 촉발하고 있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은 쿠웨이트 하루 원유 생산량의 두 배다.

텍사스주 서부와 뉴멕시코주 동부에 걸쳐 있는 사막지대인 퍼미언 분지는 미국의 셰일오일 파워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산업분석 전문 기업 '우드 매켄지'는 "퍼미안 분지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올해 330만 배럴에서 내년엔 390만 배럴, 2023년엔 540만 배럴로 늘어나고 향후 10년간 퍼미언이 미국 석유 생산량 증가의 3분의 2, 세계 석유 생산량 증가분의 4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 밝혔다.

셰일오일 생산지가 오클라호마와 뉴멕시코주, 와이오밍·몬태나·노스다코타주 등 중북부로 확대되는 것도 주목된다.

미국 셰일오일 하루 생산량이 660만 배럴을 넘어섰다

이는 미국 전체 원유 생산량의 절반 정도이며 쿠웨이트 하루 원유 총생산량의 두 배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미국의 셰일오일 일평균 생산량이 1160만 배럴에 달할 것이라 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셰일오일과 별도로 자국 내 매장된 셰일가스가 25조㎥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석유나 다른 가스 에너지와 함께 사용할 경우 약 200년간 쓸 수 있는 양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번 달 발간된 월간보고서에서 올해 미국의 연간 원유생산이 지난해보다 하루 160만 배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셰일 유정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액(NGL)을 합하면 전년 대비 증가분은 하루 200만 배럴에 달한다.

2010년대 후반 셰일오일 붐이 일어난 이후 가장 큰 폭의 연간 증가다.

올해 세계 석유수요는 지난해에 비해 하루 약 14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미국의 생산 증가분만으로 이를 충당하고도 남는다.

최근의 국제 유가 급락은 미국의 이란산 원유수입국에 대한 한시적 제재 유예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해소된 데 기인한 바 크다.

하지만 유가 하락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 셰일오일 생산의 급증에 따른 공급 과잉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세계 석유수급 상황에서는 당연히 석유수입국들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로부터 구매하는 원유의 양이 축소된다.

그러므로 OPEC은 생산량 감축을 통해 유가를 지탱하거나 유가 하락을 허용하고 생산량을 지탱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OPEC은 지난 2014년 하반기부터 2016년까지 시장에서 셰일오일을 축출하기 위해 공급 과잉과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생산을 확대했었다.

그런데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진 셰일오일이 OPEC의 당초 예상보다 저유가에 잘 견디면서 OPEC 산유국들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셰일오일의 등장으로 세계 석유시장 구조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즉 생산량 조절을 통해 가격에 영향을 주는 OPEC의 석유시장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OPEC 국가들의 원유생산 비용은 여타 산유 지역에 비해 낮다.

그러므로 저유가 시기에는 OPEC 국가들의 원유 공급이 확대되고 생산 비용이 많이 드는 셰일오일 등 비전통원유의 공급은 위축된다.

하지만 가격 수준이 비전통원유의 손익분기가격을 넘어서면 OPEC의 석유시장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셰일오일의 생산 비용이 기술진보에 따라 하락하면 하락할수록 그 영향력은 더 약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PEC은 여전히 석유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플레이어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셰일오일이 생산조절 기능을 담당하면서 OPEC을 대치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OPEC과는 달리 셰일오일은 여유 생산능력(spare capacity)을 보유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공급을 직접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즉 OPEC은 일정 규모의 여유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생산을 조절하지만 셰일오일은 가격 변화에 따라 생산이 신축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또 OPEC은 의사결정 기구를 통해 공급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셰일오일은 소규모 기업들의 개별적인 의사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OPEC은 전통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때보다 하락할 때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셰일오일은 최근의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가격이 상승할 때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여튼 OPEC은 셰일오일 생산의 급증에 직면해 또다시 양자택일의 고통스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 OPEC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 다행스런 것은 미국의 이란에 대한 원유수출 제재로 이란의 원유생산이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에 이어 OPEC 3대 생산국인 이란의 원유생산 감소가 여타 OPEC 산유국들에게는 증산 기회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생산량 증대를 꾀하는 국가들을 맹비난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원유수출 제재로 가려져 있지만 석유시장에서 셰일오일과 OPEC의 힘겨루기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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