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일보】김흥순 =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피그말리온효과(Pygmalion effect)와 21세기 리얼돌 효과(real doll effect)

리얼돌(RealDoll)은 주로 여성의 몸을 재현한, 실리콘 재질의 말랑말랑한 피부와 관절을 가진 인형이다. 러브돌, 섹스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최고급 리얼돌은 세부 형태 묘사, 뛰어난 촉감 등으로 얼핏 보기에 사람같아 보인다. 심지어 리얼돌에 인공지능을 탑재해 반응도 하고 간단한 대화도 할 수 있는 섹스로봇으로 진화하고 있다.

리얼돌은 21세기 공산품 같지만 역사적으로 그 뿌리가 깊다.

최초 리얼돌은 17세기 네덜란드 선원들이 긴 항해 때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사실 리얼돌에 대한 아이디어는 멀리는 그리스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피그말리온 신화와 리얼돌 현상은 타인을 나와 동등한 개체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기대를 투사하고 충족시키는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최근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남성이 리얼돌과의 결혼식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일본 남성은 리얼돌과 쇼핑, 산책, 성생활을 하는 일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프랑스 여성 과학자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로봇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현재 로봇과 약혼 상태에 있다며 프랑스에서 사람과 로봇 간 혼인이 허용되면 곧바로 결혼하겠다고 밝혔다.

배교자의 밀고로 교수형으로 순교한 5월 6일 성인 에드워드 존스 (Edward Jones)와 이름이 비슷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화가 에드워드 번 존스(Sir Edward Burne-Jones)는 피그말리온 신화를 서사 순서대로 묘사한 4부작을 두 개의 시리즈로 제작했다.

번 존스는 다른 라파엘 전파 화가들처럼 신화와 중세 문학에서 소재를 빌려와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세계를 그렸다.

그는 19세기 산업화로 인한 물질문명으로부터 도피하여 꿈의 세계에 안착하고자 했다. 유부남인 번 존스는 마리아 잠바코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동반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번뇌에 찬 열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갈라테이아의 모델도 잠바코였다. 그녀는 신화 속 갈라테이아처럼 완벽한 그리스계 미인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깨지고 번 존스는 아내에게로 돌아갔다. 그의 그림 속 커플과는 달리 그자신은 비극적 피그말리온이었다.

피그말리온 이야기는 예술의 소재가 됐다.

가장 유명한 문학 작품은 아일랜드 작가 버나드 쇼의 희극 『피그말리온』일 것이다.

영국 상류사회의 사교계를 풍자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쓴 이 작품에는 조각가 피그말리온 대신 언어학자 헨리 히긴스가 등장하는데 히긴스는 한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언어학자이다.

그리고 조각상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비천한 속어를 사용하는 꽃 파는 처녀 엘리자가 등장한다. 히긴스는 엘리자에게 고급 언어를 구사하도록 훈련시켜 사교계의 우아한 여성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동료인 피처링 대령과 내기를 건다.

영국 사교계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피그말리온』을 쓴 버나드 쇼는 엘리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즉, 엘리자의 자유의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작품의 소재가 된 피그말리온 신화에서와는 다른 결말을 이끌어냈다.

엘리자는 히킨스의 지도로 상류사회의 사교계에 우아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변신했지만 인간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없는 히킨스에 실망하여, 그녀를 새로이 태어나게 한 주인의 곁을 떠난다. 버나드 쇼가 이끌어낸 이 결말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의 소재인 피그말리온 신화에 비판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에 대해 하나의 대답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은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이 뮤지컬은 195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오랫동안 공연이 되었다. 브로드웨이 초연에서는 후에 《사운드 오브 뮤직》에 출연한 쥴리 앤드류스가 주인공을 맡았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또한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영화에서는 오드리 헵번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로젠탈효과 또는 피그말리온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자성적 예언,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신화 속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의 뛰어난 예술가였다. 일설에 의하면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의 왕이었다고도 한다.

키프로스 섬의 수호신은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피그말리온은 거리낌 없이 매춘을 하는 부도덕하고 문란한 섬의 여인들에게 혐오감을 느껴 독신으로 살면서 오로지 조각을 하는 데만 몰두했다.

피그말리온은 현실의 여인들을 외면한 채 자연의 고귀한 재료인 “백설처럼 흰” 상아로 실물과 같은 크기의 여인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완성된 조각상은 마치 실제로 살아있는 여인처럼 보였다.

그 조각상은 그 자체가 바로 피그말리온의 이상형이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점점 실제의 여인으로 느끼게 되면서 밤낮으로 그 조각상을 어루만지고 심지어는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를 “뜨겁게 열망”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기도는 하지 못하고, 이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피그말리온이 집으로 돌아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다.

순간 입술에 온기가 느껴지면서 조각상은 서서히 살아있는 여인이 되어갔다. 마침내 아프로디테가 그의 기도를 들어준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 10권에서 인간이 된 조각상 여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둘을 맺어준 아프로디테는 친히 이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주었다.

아홉 달 후 둘 사이에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피그말리온은 이 아이에게 파포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아이는 아들이라는 설도 있고 딸이라는 설도 있는데 『변신 이야기』에는 딸로 기록되어 있다.

『변신 이야기』에서는 피그말리온 이야기 바로 앞에는 아프로디테가 키프로스의 여인들을 벌하는 이야기가 나오며 여기에는 키프로스 섬의 수호신이자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자신에게 불경한 섬 여인들에게 벌을 내려 수치심도 없이 매춘을 하게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피그말리온 이야기 뒤에는 피그말리온의 자손인 뮈라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는 뮈라의 아들인 아도니스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피그말리온 이야기는 앞뒤의 이야기들과 하나의 시리즈처럼 연결이 되어있다. 이러한 방식과 관련하여 게롤트 돔머르트 구드리히는 오비디우스는 신화 속의 여러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이어 연결하는 방식을 통해 『변신 이야기』를 탁월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한다.

조각상에 붙여진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은 고전문헌에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으며 그 이름은 후대에 와서 얻게 된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와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카르타고의 전설적인 여왕 디도는 아이네이아스를 사랑하다가 그가 떠나자 불 속에 뛰어들어 자살했는데 디도의 오빠 이름도 피그말리온이다.

복잡하고 피곤한 관계에 지쳐 있는 현대인들은 점점 번잡한 대면 관계를 피하고 있다.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혼자 시간과 자유를 즐기려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얼굴을 맞대기보다 전화로, 목소리를 주고받기보다 문자가 편안하다.

서로 부대끼는 인간관계보다 말못하는 애완 동물이 좋다.

혼밥, 혼술이 편하다. 이런 이유로,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도 같은 종을 회피하고 다른 종류의 사랑을 찾아 나서고 있는 21세기는 상상 속 신화와 만나고 있다.

저작권자 © 청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