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주는 풍성함으로 발끝까지 행복한 가을날 누리시길

▲ 이영숙 시인과 본지 이성기 기자.

【충북·세종=청주일보】 이성기 기자 = 이영숙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마지막 기차는 오지 않았다’(고두미)가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이 시인이 지난해 출간한 인문학 에세이 ‘낮 12시’에 이어 이번에도 독서를 바탕으로 한 인문적 사유 시 성격에 가깝다.

 

시집 ‘마지막 기차는 오지 않았다’의 주요 키워드는 우주론적 세계관으로 탈 중심을 띠며, 인간과 동물의 수평적 생명 사상, 성 정체성과 양성평등 사상, 잃어버린 자아의 원형을 찾아가는 실존주의 사상이 자리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이따금 공자, 장자, 니체의 철학이 배경처럼 드리운다. 유교 핵심 도덕인 공자의 이분적 사고를 전복하고 장자와 니체 중심의 우주론적 사고와 자유, 새로운 길 트기를 지향한 주제들이다.

 

토요일 이른 아침 중앙공원 망선루에서 227회 희망주자로 이시인을 만났다.

 

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영: young해지는 시를 감상하니

숙: 숙면이 그냥오는 구나!

 

▲ 온라인 친구들을 위한 소개

 

안녕하세요. 시인 이영숙입니다. 현재 저는 방과 후 학교에서 독서 논술 수업과 대학에서 ‘독서 토론’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 세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인문학 에세이를 내셨다.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주로 독서를 통해 얻어요. 평소 독서량이 많은 편인데 날마다 3시간 이상은 꼭 책 읽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는 일이 독서와 논술이다 보니 어린이 도서에서 성인 도서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완독합니다. 직접 강의용 텍스트를 선정하고 활동지나 워크북을 만들어 강의하다 보면 그림책에서 철학서까지 독서 폭이 광범위하죠.

 

물론 전공이 국문학이라 문학은 기본이고 주로 역사, 철학, 인문 관련 서적과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 사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유하는 힘과 창작 지평도 확장하는 것 같아요. 물론 시적 영감의 최 정점은 자연과 같은 야생이에요. 햇빛 드리운 자연에서 풀냄새, 바람소리 배경삼아 좋은 작품은 소리 내어 낭독하기도 하고 그러다 시가 찾아오면 물 흐르듯 쓰기도 합니다.

 

▲ 어려서 꿈도 시인이었는가?

 

시 잘 쓰는 국어 교사가 꿈이었지만, 지름길로 오지 못하고 구부러진 길을 빙빙 돌아 뒤늦게 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시인으로 등단하고 중등 국어 교사 자격 취득을 위해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지요. 슈퍼거북처럼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시인, 작가, 선생님 등등의 별칭이 붙어있네요. 학생들과 좋은 책을 읽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학 심상을 키워가고 있으니 저는 지금의 이 삶이 참 행복합니다.

 

▲ 일반인들이 시를 쓰기 위한 길잡이 책을 소개한다면?

 

조선 4대 세종대왕은 책 한 권을 백 번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어요. 그 원동력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결과까지 이어졌듯이 우선 좋은 책이나 시집을 많이 읽는 거겠죠.

그런 다음 시인이자 소설가인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기본으로 읽으면 좋아요. 글을 어떻게 시작하고 써야 할 지 방향을 잡아주거든요.

▲ 청주시 중앙공원 망선루에서 이영숙 시인과 227회 희망 인터뷰을 갖았다.

▲ 언제 가장 보람이 큰 가?

 

학생들이 제게 선생님처럼 시 잘 쓰는 논술 샘이 되어 행복하게 수업하는 거라고 말할 때죠. 저는 시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요. 시를 통해 아이들의 생각이 풍성하고 따뜻한 인성을 키우도록 많이 음미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삶 속에서 실천하게 하죠. ‘무심코 지워버린 거미줄, 나는 오늘 남의 집 한 채를 부쉈다’는 성찰을 통해 타자 입장이 되어보는 따뜻한 인성이 길러지는 거죠ㅡ(이묘신, '거미야, 미안해')

 

그래서 수업 시작 전엔 늘 한 편의 동시를 낭송해요. 진지하게 낭송하는 그 표정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정말 시처럼 아이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하는 것은 없거든요. 좋은 시는 인성 함양에도 최고입니다. 2학기 이맘 때 쯤엔 장래희망이 논술 샘이나 시인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좀 나와요. 그러면 엄마들은 돈 안 되는 직업이라고 말리나 봐요.

 

그래도 저를 거쳐 간 학생들은 잘 성장했습니다. 졸업하고도 끊임없이 찾아오는데 장문의 손 편지를 써 들고 와요. 시험 끝나는 날이거나 스승의 날 우르르 몰려와 복도에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 읽으며 기다리기도 하고 후배들 사이에 슬그머니 앉아 수업을 듣곤 해요. 지금 고3인 규현이라는 제자는 여름방학, 겨울방학이면 꼭 카톡을 넣고 찾아와요. 와선 사회문제며 여러 가지 논술 문제를 묻곤 하죠. 요즘처럼 포노사피언스 시대에 손 편지를 들고 찾아오는 제자들을 보면 정말 흐뭇하고 이 일에 대한 보람도 큽니다.

 

▲ 향후 계획이나 목표는?

 

지난해 독서와 논술적 사고를 바탕으로 쓴 인문학 에세이 '낮 12시'가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까지 들어가 학생들의 사고 지평을 넓히는 데 한몫하고 있어요. 학생들 사이에 이 책이 읽히면서 인연이 닿아 올 3월부터 충북대학교에서 RC교육 1학년 독서토론 강좌를 맡았죠. 그 바람에 지난달 인문적 사유를 골조로 하는 시집 '마지막 기차는 오지 않았다'도 출간하였고요. 앞으로도 시집이든 에세이든 작품노선은 독서를 통한 사유가 바탕일 겁니다.

 

내년 목표는 올해 대학에서 강의한 자료를 묶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독서토론』책을 엮을 계획이고 향후 청소년층까지 공감하는 독서 사유시나 인문 에세이를 쓸 계획입니다.

 

[동영상]이영숙 시인의 227회 희망 인터뷰 동영상 모습

▲ 덕담(희망 몌세지)

 

행복은 선택입니다. 그 열쇠는 내게 있어요.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많을수록 더 큰 속박을 당하게 되고 크게 바랄수록 자유가 적어진다고 했습니다.ㅡ(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상대를 보면 나는 늘 우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에 없어도 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강아지 똥도 민들레씨앗의 거름이 되었듯이 저마다 존재이유를 안고 태어났어요.

 

행복의 기준점은 나 자신이에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스스로 성찰하면 될 것 같아요.

 

물질이 주는 행복도 있지만, 좋은 문장이나 자연이 주는 행복도 아주 큽니다. 깊은 가을날, 최승호 시인처럼 노란 은행나무 아래 모자 벗고 몸 그대로 느낌표로 서보는 일, 그대로 시겠죠?^^ 집에 가는 길에 서점 들러 시집 한 권 골라보는 일도 커피 향 드리운 카페에서 책을 읽는 일도 시처럼 살아가는 일이니 그대로 시입니다. 가을은 사방팔방이 시입니다. 경적 울리는 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도 서사 풍경이 있는 시이지요.

 

자본주의는 자꾸 우리를 욕망하는 존재로 만드는데 그럴 때마다 시를 통해 잃어가는 나 자신의 실존, 순수한 민낯을 만나보세요. 허상이 없을 때 가벼운 평온을 느낍니다.ㅡ(이영숙, 나를 찾았는가) 시가 주는 풍성함으로 발끝까지 행복한 가을날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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