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생태 교육의 장 내암리와 인문정신이 살아있는 인차리를 가다

【청주일보】 박창서 기자 =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는 청주의 대표 하천 무심천의 발원지를 품고 있는 마을이다. 계곡 주변에 인가와 농토가 없어 천혜의 자연 경관이 그대로 살아있다.

청주에서는 내암리를 ‘생태계의 보물창고’로 부르고 있다. 그만큼 희귀생물의 서식처로 대접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30년간 청주 시내 환경단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내암리는 산세가 험하고, 골짜기가 깊어 7~80년데 심심산골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진로 하이트’ 생수공장이 들어설 정도로 물이 맑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내암리는 2019년 ‘조은누리’학생의 무사생환지로서도 유명한 지역이다.

‘조은누리’학생이 무사히 살아 돌아온 이유 즉,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한 힘, 생명의 힘, 그걸 잘 보여준 게 바로 내암리다. 

내암리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지형이 활처럼 생긴 형국 안에 있다하여 오랜 옛날에는 마을 이름을 궁내라 정할 만큼 자연경관이 병풍처럼 펼쳐진 천혜의 요새이다.

그렇다면 이 산줄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속리산에서 시작되는 한남금북정맥에서 피반령 방향으로 빠져나온 팔봉지맥의 줄기 중간에 대수산이 자리하고 있다. 대수산은 대술산, 군자봉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 대수산에서 무심천의 물줄기가 시작된다. 

“♪내암리물 흘러서 무심천물~ 무심천물 흘러서 미호천물~ 미호천물 흘러서 금강물~ 금강물 흘러서 서해바다♪”내암리를 찾은 생태학교에서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다.

노래를 들으면 단번에 내암리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흘러서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있다.

발원지에서 솟아난 작은 물줄기는 골짜기를 내려와 마을을 지나 금거리에서 머그미재 물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다 한계천과 만나 상대리 앞에서 북쪽으로 급회전을 하여 고은삼거리, 장평교, 청주대교, 흥덕대교를 지나 청주시가지를 가로지른다. 까치내에서 미호천과 합류해 금강으로 흘러 서해까지 간다.

맑은 물을 품고 있는 내암리는 자연생태계의 보물창고로 각광 받는 곳이다. 등산객이나 여름 한철 계곡을 찾는 사람들, 자연학습을 하기 위한 단체 활동 외에는 의외로 발길이 드문 편이다. 

자연 그대로의 계곡이 있는 내암리에서 물놀이, 돌탑쌓기, 물수제비 뜨기, 돌맹이 그림그리기, 물방울놀이 등 생태학습을 할 수 있다. 물길을 바로 지나치면 커다란 논이 있고 그 논은 양서파충류 서식지이다. 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로 들썩인다. 이곳에는 개구리 알, 도룡뇽 알이 많다.

아이들이 여름학교에 참가하면 올챙이와 노느라 정신이 쏙 나가고 잠자리 잡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내암리에는 나비 종류가 다양해서 나비 채집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또 메뚜기와 딱정벌레와 같은 곤충들도 이 구역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

또한 내암리 사방댐이 위치한 아래쪽에 다리가 있는데 그곳에는 복분자가 많이 자라고 있다. 복분자 나무 지역을 막 돌아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는 키 큰 쥐똥나무가 사방댐 진입을 막아주는 담장처럼 심어져 있다.

맞은편에는 산초나무가 있다. 산초 잎을 얼굴과 몸에 붙이는 활동은 생태활동에서 인기가 좋다. 양쪽 눈 밑 볼에 붙이면 인디언으로 자연 변신하고 뺨에는 타투처럼 모양내기를 한다. 사진을 찍으면 절로 작품이 된다.

으름덩굴과 생강나무가 있고 물가 생물들이 서식하는 내암리는 생태학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배움터도 되고, 쉼터도 되는 곳이다.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는 청주 근대 교육의 산실인 문동학원이 있는 마을이다. 그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과 고령신씨문중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인차리는 7~80년대 충북 최초의 도시공원 묘지가 조성된 마을이다.

그만큼 도시와 마을의 변화가 밀접하게 연관됐으며 시와 영화로 유명한 ‘접시꽃당신’의 배경이기도 하다.

1638년에 보은으로 행차하던 인조가 그 마을에 잠시 머물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어느 날 낮잠을 청했는데 꿈에서 신령이 나타나서 인조에게 “장차 이곳이 도학 숭상의 본거지가 될 것"이라! 말했다.

인조가 다녀간 후부터 마을에는 연이어 대풍년이 들었고, 백성들은 온갖 경사스러운 일들을 맞이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인조는 자신이 행차한 마을이라는 뜻을 담은‘인차리’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했고, 도학을 더욱 숭상하라고 명했다고 한다. 

가덕면 인차리는 논과 밭으로 둘러 쌓인 지역이었는데 1977년 도립공원묘지 조성계획이 확정되고 공원묘지를 설계하고 조성하면서 진입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 등 지역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인차리에 조성한 공동묘지의 규모가 워낙 커서 당시 청주에서 세상 뜬 사람들을 전부 수용하고도 남았다. 1980년대 청주 인근에 흩어져 있던 소규모 무덤의 연고자들이 가덕공원묘지로 이장을 많이 했으며 당시 청주 사람들은 “죽으면 인차리로 가야지”란 말을 자연스럽게 할 정도로 대표적인 도시 공원묘지였다.

가덕공원묘지는 매화공원으로 명칭변경 돼 가덕면 상장인차로 460에 위치하고 있으며 설치면적 21만6462㎡에 분묘 1만2439기가 설치됐고 봉안시설 매화원이 있다.    

가덕면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유난히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주고령신씨는 일면 산동(상당산성의 동쪽이라는 뜻)신씨 라고도 하는데 근대에 들어 문중 개화의 길을 걸으며 많은 인재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그중 ‘산동삼재(山東三才)’라 일컫는 신규식, 신채호, 신백우가 대표적이다.

충북의 독립운동가를 꼽자면 단연 신채호 선생을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덕면에서, 특히 인차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독립운동 명문가가 대대로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청주 출신 독립운동가 가운데 12%가 고령신씨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다. 

인차리 소재 가덕면행정복지센터 바로 앞에 멋진 바위산이 있다. 이산은 고령신씨 문중의 산으로 산꼭대기 쯤을 향해 올라가면 햇빛이 잘 드는 무덤이 하나 있다.  3.1만세운동 33인의 한 사람인 독립운동가 신홍식선생의 묘이다. 신홍식 선생의 묘에서 내려다보면 인차리의 모습이 한눈에 담긴다. 

가덕면 인차리는 근현대 인문 정신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그 유명한 단재 신채호와 고령신씨 문중의 독립운동의 산실로 귀하게 대접받아야 마땅한 곳이다.

청주지역 근대 학교도 이곳 인차리 문동학원에서 그 씨앗을 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인차리의 인문정신의 맥은 현대까지도 흘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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