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일보】 김흥순 =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의 작품(1898년) 고다이바 부인(Madam Godiva)

12월 3일 저녁 서울의 유명 로펌 변호사 한 명이 살인자가 됐다.

"아내 다쳤다"고 신고한 남편이 살인자였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부인을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50대 남편이 경찰에 체포됐다. 붙잡힌 남성은 대형 로펌 변호사로, 부부 싸움을 하다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걸로 알려졌다.

A 씨는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해당 로펌 측은 사건 직후 A 씨가 퇴직 처리됐다고 밝혔다.

뉴스를 듣는 순간 공인의 이야기가 담긴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의 작품(1898년) 고다이바 부인(Madam Godiva)이 생각났다.

이 그림은 실제와 허구가 섞여 있다.

흔히 역사는 합의된 거짓말, 혹은 승자에 의한 기록이라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미덕을 강조하고 결점은 외면한다.

때로는 전설과 거짓말이 역사로 둔갑하며,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일 경우도 있다.

역사책은 종종 인간의 욕망과 상상, 가치에 의해 재창조된 허구로 채워진다.

극도로 금욕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성문화를 가진 중세시대, 깊은 신앙심을 가진 귀족 여성이 누드로 길거리를 순회했을 리 없다. 민중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 고다이바 이야기 역시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신화다.

고다이바 부인은 역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다.

고다이바와 레오프릭 부부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수도원을 설립하고 후원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고다이바는 설화에서처럼 관대하고 경건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체로 거리를 돌아다닌 사건에 대한 동시대 역사적 기록은 없다.

이 매혹적 스토리는 그녀가 사망한 지 약 200년 후 세인트 알반스 수도원 수도사였던 로저 웬도버의 기록문서 '역사의 꽃들(Flores Historiarum)'에 처음 나타난다.

그러나 이 책은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출처 자료가 의심스러워 고다이바 이야기도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대체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 민간에 구전된 설화로 추정된다.

백작이 아내에게 전라의 상태로 마을을 돌아다닐 것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허구다.

사료에 의하면, 당시 코번트리는 그녀의 소유였고, 레오프릭이 아닌 고다이바가 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이것도 신빙성이 없다.

13세기 노르만 정복 이전의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서는 여성이 토지를 상속 받고 소유하며 관리할 수 있는 재산권이 보장돼 있었다.

민속설화에서는 레오프릭을 농민들을 착취한 냉혹한 영주로 묘사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그가 존경받는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거벗었다'는 것은 실제로 옷을 벗은 게 아니라 화려한 드레스와 값비싼 보석 장신구를 벗어버림으로써 신 앞에 자신을 낮추고 용서를 빌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세문화에서 부의 축적은 죄악이었고 부의 표식인 사치스러운 옷, 장신구를 벗는 것은 신에게 속죄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당시엔 참회를 위해 소매 없는 흰옷을 입고 공공 행렬에 참가하는 풍습도 있었다.

세금을 징수해 부를 쌓은 것에 대해 회개한다는 뜻에서 소박한 흰옷을 입은 것이 후에 나체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다이바 이야기는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일부에 존재했던 아주 오래된 이교도 전통에서 유래된 설화일 수도 있다.

역사가들은 이 이야기에서 벌거벗은 풍요의 여신이 말을 타고 마을을 돌며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 의식의 모습을 발견했다.

다른 역사학자들은 오월제 퍼레이드에서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 옷을 입고 티아라 왕관을 쓴 메이퀸이 봄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말을 타거나 걷는 풍습과 연관시킨다.

그렇다면, 중세교회가 이교도 여신을 경건한 기독교 성녀로 기독교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나체, 말, 희생, 신앙심,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의 개념들이 혼합된 것이 아닐까.

고다이바 부인(Madam Godiva)은 11세기 영국의 코벤트리 시(Coventry)의 영주(領主)인 레오프릭(Leofric)백작의 부인이었다

고대 영어로는 Godgifu. 영국 워릭셔 주(州) 코번트리에서 알몸으로 말을 타고 달린 전설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을 다스리는 머시아 백작 레오프릭의 부인인 고다이바는 주민들의 세금이 과중해 어렵게 사는 것을 동정하여 남편에게 세금을 감해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영주는 부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위해 조건을 내세웠다.

그 조건이란, 벌거벗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고다이바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서 결국 시민들의 세금을 줄이는데 성공하였다.

농민들을 위해 나신으로 말을 탄 여인이 된 것이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바로 "Lady GODIVA" (레이디 고다이바, 고디바)라고 일반적으로 불린다.

헌신적 이 여인의 나체를 모든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고 모두들 문을 걸어 잠그고 커텐을 내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호기심 많은 재단사 톰(Tom)은 시민들과 약속을 어기고 창문 틈으로 그 부인의 알몸을 엿보았다.

그 순간 그 톰이라는 사나이는 그만 두 눈이 멀어버렸다.

옛날 코벤트리 시에서는 이 부인을 기념하는 동전을 만들어 ‘공중의 행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라는 작은 글씨를 조각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는 그 진위(眞僞)와 관계없이 고다이바 부인은 ‘공중의 행복을 위한(pro bono publico)’ 숭고한 행동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일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양복 재단사 ‘엿보는 톰(Peeping Tom, 관음증 환자)’은 졸지에 영원히 ‘관음증이나 호색한’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얘기다.

뉴욕 맨하탄에 가면 세계 최고의 고다이바라는 초코렛 상점이 있다. 이런 전설적 인물을 초코렛 회사에서 상표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는 이 얘기에서 몇가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공인들의 자세

고다이바 부인이 공개한 알몸은 순결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이의 공개는 순진무구한 무한 봉사를 상징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공인(公人)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 고다이바부인이 가르쳐 주고 있다.

공인이란 고다이바 부인처럼 공중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존재다. 여기서 우리는 어느 한 사람이 공직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수치스러움도 없는 알몸으로 나서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어떤 수치도 옷으로 가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높은 공직에 오를수록 그 사람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요즈음의 국회에서 공직취임 예정자를 앞에 앉혀 놓고 그 너울을 사정없이 벗겨 내는 것도 그 일환이다.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겹겹의 옷으로 감싸고 있어서는 공직에 취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특권 200개 가진 국회의원들은 더 엄격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점점 더 이러한 사회로 성숙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 공중의 행복추구가 사명일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우리는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톰이라는 사나이가 부인의 알몸을 문틈으로 엿본 행위로 인해 하늘의 벌을 받았다는 뜻은 또 무엇일까?

‘엿본 톰’은 호색한의 대명사처럼 쓰고 있지만 호색한이기 때문에 하늘의 벌을 받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벌 받은 것은 신의성실(信義誠實)이라는 법률의 기본 철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률의 대원칙을 어기고서야 어찌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국민들에 말한 모든 약속은 바로 법이다.

법을 교묘히 어길 수 있는 사람이 언제나 유능한 사람이 되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화려한 옷으로 잘도 감싸 안은 사람이 출세하는 사회에 대한 경종이 바로 고다이바 부인에 대한 얘기다.

고다이버라는 이름에서 많은 상품과 이름이 탄생했다.

고다이버를 제품 명으로 쓴 여러기업들 가운데 '말을 탄 고다이버의 나체'를 로고로 한 Godiva Chocolatier은 세계적 초콜릿 재벌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걸작 '이창', 마이클 파웰의 '저주의 카메라'는 피핑 톰, 즉 관음증을 소재로 한 대표적 영화다.

고귀한 부인의 이야기와 관련해 부정적 뜻을 지닌 피핑 톰과 달리 '고다이바이즘(Godivaism)'이라는 긍정의 파생어가 있다.

이는 '부당한 관행이나 어긋난 상식, 억지스러운 힘의 역학에 맞서 대담한 역의 논리로 뚫고 나가는 정치'를 의미한다.

힘없는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뜻밖의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 고다이버 부인의 공익 행위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

옳음보다는 그름이 위세를 부리고, 정의가 아닌 불의가 판치는 현난(賢難:어진 사람을 얻기 어려움)의 시대. 비뚤어진 관행과 뒤집힌 상식, 힘의 논리를 바로 잡을 고다이바이즘의 정치가 필요하다.

(그림)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라파엘 전파 화가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의 작품(1898년)Lady Godiva, 1898, John Collier, Courtesy of the Herbert Art Gallery & Museum, Cov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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