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일보】 김흥순  = 법률가 엘리트 정치보다 건달 정치가 더 낫다.

평민출신 건달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귀족이자 천하제일 장사인 초(楚)나라 항우(項羽)의 싸움은 누구나 보듯 항우의 승리로 예상됐다.

하지만 천하는 유방의 손으로 넘어갔다.

유방은 자신의 승리 비결을 인재 활용에 있다고 밝혔다.

자신이 무식하니 전문가들에게 맡긴 것이다.

자신은 전략가 장량과 군수를 책임지는 소하, 장수 한신보다 부족하지만 이들을 거느리고 있기에 항우를 이겼다는 것이다.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가장 큰 공을 세운 한신(韓信)을 초왕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유방은 한신이 자기에게 도전할 것을 우려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유방과 한신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항우 휘하의 장수였던 종리매 때문이었다.

한신과 종리매는 오래된 친구라 종리매는 자신의 몸을 한신에게 맡기고 있었다.

초나라와 전투에서 종리매에게 당한 기억을 갖고 있던 유방은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한신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한신은 옛 친구인 종리매를 배신하지 않고 그를 감쌌다.

이후 유방이 제후들을 초나라 인근인 진(陳)나라에 모이게 하자 한신은 위기감을 느꼈다. 유방이 명령불복종을 한 자신을 거세하려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종리매를 내놓기로 결심하지만 종리매는 친구로부터 배신당한 마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유방에게 바치지만 유방은 오히려 한신을 포박했다.

이때 한신은 화를 내며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삶아지며, 높이 나는 새도 다 잡히면 좋은 활도 광에 들어가고,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마땅히 팽당함이다”라고 외친다.(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한신의 외침은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 또는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으로 쓰였으며 우리가 자주 쓰는 사자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유례가 됐다.

토사구팽처럼 우리가 흔히 쓰는 사면초가(四面楚歌), 다다익선(多多益善), 금의환향(錦衣還鄕), 배수진(背水陣) 등 고사성어의 배경이 바로 초한지(楚漢誌)다.

반면, 항우는 지금으로 치면 엘리트 집안이다.

군주는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인재를 잘 활용하고, 상벌을 분명하게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항우보다 유방이 앞섰다. 고릉 전투에서 항우에게 패한 유방은 통큰 조치를 주문하는 참모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공신들인 한신, 팽월과 천하를 공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유방은 한신을 제왕으로 봉하고 초나라 땅을 줬다. 팽월에게는 양나라를 평정한 공로를 치하해 양왕에 봉했다. 그러자 한신과 팽월은 여러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전세를 뒤집었다.

반면 항우는 공신들에 대해 분봉을 잘못하는 바람에 반란과 봉기를 초래했다. 유방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했던 항우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신하들의 충고도 듣지 않았다. 불 같고 포악한 성격으로 참모와 부하들을 떨게 했다. 이 때문에 항우와 갈등이 생긴 신하들은 후환을 두려워한 나머지 유방에게 투항했다. 항우는 주변의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번번이 유방에게 빼앗겼다.

천하는 진나라가 통일하기 이전의 불안과 혼란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천하를 노리는 사람들 가운데 항우가 가장 강력했다.

항우는 모사인 범증의 건의에 따라 초나라 왕실의 후손을 찾아 왕으로 세우는 등 초나라의 부흥을 명분으로 거병했고 이에 공감한 많은 사람이 항우를 따랐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세력이 강해지자 항우는 자신을 과신하고,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기 시작했다.

한 번은 초(楚) 회왕이 진나라 수도 함양을 먼저 함락시키는 사람에게 그 땅을 주고 왕으로 삼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 경쟁에서 유방이 이겼다. 그러나 항우는 회왕의 약속을 무시하고, 유방을 대륙 서쪽의 변방지역인 촉의 한왕으로 봉해 버렸다. 이어 항우는 자신이 옹립했던 회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정권을 잡았다.

경우 없는 행동이었다.

이런 항우의 행동에 실망한 사람들은 항우를 떠나 유방을 의지하게 되었다.

기원전 202년, 해하에서 유방은 항우를 떠나 온 사람들과 힘을 합쳐 사면초가 전략으로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거머쥐었다.

천하를 차지한 유방이 신하들과 함께 승패에 대한 원인을 분석했다. 이때 한신이 나와 항우에 대해 ‘재능은 유방을 능가하지만, 성격이 지나치게 소심하고 자기중심적이므로 큰 인물이 못 된다’라고 평가했다. 항우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결국 경우 없는 행동을 불러왔으며 이것이 항우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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