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일보】 김흥순 = 저자는 사람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려면 보건의료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는 의료 전문가가, 국민연금은 연금 전문가가 풀어야 한다는 전문가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남미의 역사적 경험으로 깨닫게 한다.

세계 혁명가들중 변호사 출신 혁명가로는 레닌이 있고, 의사 출신으로는 중국의 손문, 쿠바의 체 게바라, 칠레의 아옌데가 있다.

특이하게 남아메리카는 의사 출신 혁명가가 많다.

그 이유는 1960~70년대 남미 독재정권들은 하나 같이 지역사회 빈곤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추적해온 의사들을 체포해 고문했기 때문이다.

남미에서 사회의학은 반세기 전 낡은 구호가 아니라 지금도 유용하다.

1990년대 후반 격렬했던 엘살바도르 국민들의 보건의료 민영화 저지 시위는 하나의 사회운동 모델이 됐다.

엘살바도르 사회보장청은 1998년부터 민간업체가 공공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의료 민영화의 출발이었다.

세계은행과 엘살바도르 정부는 이를 적극 추진했다.

5년 동안 보건의료 노동자와 국민들은 저항했다. 의사들은 파업기간 길거리에서 급성환자를 돌봤다. 2003년 9개월 동안 계속된 파업은 세계은행이 엘살바도르 공중보건 체계의 현대화를 목적으로 제공한 차관 계약에 포함된 민영화 조항을 철회하면서 끝났다.

세계은행은 1999년엔 볼리비아에서 물 민영화를 추진했다.

세계은행과 볼리비아 정부는 민간기업이 상하수도 공기업을 40년 동안 운영해 수자원 서비스를 독점할 권리를 주려고 했다.

계약체결 몇 뒤 뒤 상수도 값은 200% 인상됐다. 국민들은 물 민영화에 봉기로 맞섰다. 2005년까지 5년간 이어진 시위는 볼리비아에서 신자유주의 흐름을 깬 첫 번째 사례가 됐다. 이 투쟁은 2005년 모랄레스 대통령의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은이 하워드 웨이츠킨은 사회학과 의학 두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뉴멕시코대학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다.

저자는 칠레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이 1939년 의학자 시절에서 쓴 ‘칠레의 의료-사회적 현실’에서 출발한다.

병리학자였던 아옌데는 당시 인민연합 정부의 보건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이 책을 썼다.

아옌데는 질병을 유발하는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에 집중했다. 건강과 사회적 조건을 결합시킨 ‘사회의학’은 중남비 보건의료 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기준이 됐다.

아옌테는 1971년 집권한 뒤 칠레 산티아고의 노동계급 주거지에 있던 공공병원 외과 과장을 보건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는 1973년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 이후 고문 당한 뒤 남금 옆 혹한의 도슨 섬 감옥에서 1년을 보낸 뒤 베네수엘라로 망명해 거기서 14년 동안 외과 교수로 일했다.

그는 1988년 민주화된 칠레로 돌아와 젊었을 때 일했던 공공병원 외과 과장으로 복귀했다.

‘사회의학’이란 말은 독일의 루돌프 피르호가 처음 언급했다.

피르호는 1848년 혁명 절정기에 개혁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조건들이 질병과 사망에 미치는 효과를 선구적으로 연구하다가 남미로 이주해 병리학 교실을 이끌었다.

피르호의 제자 막스 베스텐회퍼도 칠레의과대학 병리학 교실에서 수년간 가르쳤다. 아옌데가 바로 그 병리학 교실의 학생이었다.

칠레 사회의학은 1918년 초석 광산 파업에서 출발했다.

당시 파업 노동자들은 영양실조, 감염병, 조기 사망의 유일한 해법을 경제개혁에서 찾았다.

1920~1930년대 칠레 사회의학의 발전은 노동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내과 의사이자 병리학자였던 아옌데는 이런 문화 속에서 자랐다. 아옌데는 질병을 처참한 사회적 조건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장애로 개념화했다. 그는 의학적 처방보다 사회적 해법을 옹호했다.

1920년대 아르헨티나에선 외과의사 후안 후스토가 위생 문제로 접근하던 당시 공중보건 계획에 이의를 제기했다.

후스토는 아르헨티나 사회당의 초대 지도자가 됐고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려면 폭넓은 사회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후스토 노선은 에르네스토 체게바라가 이어갔다. 체게바라는 모터사이클 여행을 통해 빈곤과 고통에 놓인 남미인들을 보면서 사회혁명이 건강을 향상시킬 필수조건이라고 여겼다.

"의료 행위의 목적은 '돈 벌이'가 아니라 '시민의 건강'이다." 당연한 말이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등 시장 중심 의료 체계를 따르고 있는 국가는 대부분 그렇다.

의료가 '돈 벌이'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나라도 많다. 의료가 시장이 아닌 공공 부문에 속한 나라들이 주로 그런 국가들이다.. 대표 나라가 쿠바다.

쿠바 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인 체게바라가 의사출신이라 체계를 아주 잘 잡았다.

고급 의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매년 새 학기에 모집할 인원을 쿠바 정부에서는 각 정부 혹은 진보적 정당, 사회단체 등에 알리면, 각국의 진보적 정당이나 사회단체, 좌파정부 등에서는 자국의 학생들을 선발해 쿠바로 보낸다.

쿠바 정부에서 정한 입학기준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25세 이하의 가난한 가정의 학생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정도다.. 이곳 학생들은 대부분은 졸업 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는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산골짜기 오지에서의 진료를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무료로 교육시켜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에서 돈벌이를 목적으로 진료하려는 학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을 스스로 산골짜기를 찾아간다. 이것이 쿠바가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도덕적 의무'다.

교과과정에 철학이나 인권, 빈곤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지는 않았는데도, 의료 행위는 '돈벌이'가 아닌 '환자의 건강'이 목적이라는 상식적 덕목으로 살아간다. 돈벌이에 혈안인 의료를 키우는 의료계는 개혁돼야 한다.

저자 하워드 웨이츠킨 (Howard Waitzkin)

하버드대학교에서 탤컷 파슨스(Talcott Parsons)의 지도로 사회학 박사와 의학 박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한 이후,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등을 거쳐 뉴멕시코대학교(University of New Mexico)에서 오랫동안 재직했다.

현재 동 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 캠퍼스(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의과대학의 겸임교수다.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폭넓은 주제들을 연구해 왔다.

2011년에 출간된 이 책 외에 주요 저작으로 The Second Sickness (1983; 2000), The Politics of Medical Encounters (1991), At the Front Lines of Medicine (2001), Health Care Under the Knife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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