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일보】 김흥순  =L'horreur des bourgeois est bourgeoise.부르주아를 싫어하는 것은 부르주아스럽다.쥘 르나르(Jules Renard)

한국의 요즈음 공천을 통해 나타난 강남좌파는 짝퉁이고 사이비 좌파들이다.

전혀 진보적이지도 않고, 기득권을 혁파하고 타도하자고 하면서 기득권들이 만든 좋은 제도는 이용하고, 권력만 잡고 보자는 식이다.

좌파 성향의 고학력 고소득자를 칭하는 일종의 수사어. 2005년 강준만이 《강남 좌파》라는 책을 출판하면서부터 한국 사회에서 빈번히 인용되기 시작했다. 이 집단의 사람들이 강남 수준의 소득과 학력을 가졌으나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붙었다

이들을 한국 리버럴, 진보 지지의 주류를 고소득층이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외국에서 쓰이는 유의어로는 리무진 자유주의자(Limousine Liberal), '살롱 좌파', 프랑스에서는 '캐비어 좌파', 영국에서는 '샴페인 사회주의자', '라떼 리버럴' 등이 있다.

영국에서는 별도로 고소득층인데도 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가디언 독자'라 부르기도 한다. 영국 최대의 진보 정론지인 가디언의 주요 독자가 중산층 이상이라는 점을 꼬집는 것이다.

이렇게 소속 계급과 정치 사상이 괴리된 사례는 일찍이 19세기부터 존재해 왔었다.

프랑스 혁명시대 근대 계몽 사상가들로 연결된다.

프랑스 혁명 같이 왕정을 해체한 혁명 배경에는 부르주아 계층이 있었다.

부르주아는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형성된 비귀족 상류층들이었다. 이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 지식인, 예술가들에게 후원하며 새로운 문화 조류를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 능력주의 등 현대까지 내려오는 주류 이념이 탄생하였고, 이 이념으로 정당화된 혁명이 일어났다.

19세기~20세기 초에 존재한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사상적 배경을 형성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중산층 이상의 부르주아 지식인 출신이었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로자 룩셈부르크, 미하일 바쿠닌,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체 게바라, 시몬 볼리바르가 모두 집안이 중상류층이었다.

독일 사회민주당 등 역사가 오래된 좌파 정당들도 당원들이 왈츠와 와인 파티를 즐기는 등 부르주아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스웨덴도 마찬가지. 특히 올로프 팔메가 속한 팔메 가문은 스웨덴에서 발렌베리 가문과 쌍벽을 이루는 재력가 집안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회주의 등 좌파 정치 사상의 흐름을 연구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소재가 되고 있다.

근대 계몽사상가들도 상당수는 학식과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부르주아 시민이나 귀족 출신이 많았다. 서구뿐만 아니라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호치민과 같은 동아시아 지역의 공산주의 혁명가들도 상당수 중산층, 지식인 계층 출신이었다.

물론 진짜 서민 출신 혁명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초졸 금속노동자 출신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 등 진짜 서민도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막장 가정 출신이다.

지식인 계층 중에서도 특히 운동가 중 주류를 차지하는 직업이 있는데 바로 교사, 의사, 대학(원)생, 법조인이다.

사회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학식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그런 모순의 실제 사례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시대적 상황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19세기는 물론 20세기 초까지도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가져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의무 교육이 시작된 것은 1852년 미국이었고 영국은 1860년, 프랑스는 1872년이 돼서야 의무 교육이 시작된다.

이런 시대에 중산층 이하의 계층이 고등교육을 받고 사상적 기반을 갖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근대 좌파, 사회주의 계열 혁명가 및 정치가 상당수는 이렇게 고등교육을 받을 경제적 여유가 있던 중산층 이상 계층의 출신이거나, 출신 자체는 빈곤하지만 그 재능에서 두각을 나타내 주위 사람들이나 제도의 지원(장학금 등)을 통해서 공식 교육을 받을 여유가 있던 인재들이었다.

하류 계층 출신으로 제대로 된 교육도 지원도 없이 정말 개인 의지만으로 독학으로 지식을 쌓으며 활동한 사상가들도 없진 않다.

지식인 출신에 비해 하층 비율은 매우 적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중상류층 출신 사상가 및 활동가들은 자신의 사상과 활동에 대한 '충성심'이 하류층 출신보다 강하다.

그 충성심이 지나쳐 독선과 아집, 교조주의 등에 빠진다.

특성상 순간적 정열이나 억압에 대한 증오와 같은 감정적 이유가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그 이론을 고찰할 여유가 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사상에 집착한다.

공산주의 유머에 이런 게 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사회주의 저승에 가고 싶다"고 신청해왔다.

거기에 있던 저승사자가 그의 출신 성분과 직업 그리고 아내에 대해 묻자, 그는 자기가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랐고 직업은 학자였으며 아내는 귀족의 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저승사자는 기가 찬 듯 "아니, 반사회주의적 특징을 다 갖고 있으면서 왜 거길 가려고 하냐? 도대체 당신의 이름은 뭐냐?" 라고 물었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라 대답했다.

비슷한 농담으로 좌파 염라대통령이 출신성분과 직업을 물어봤다가 "하급 귀족 출신으로 직업은 변호사"라는 대답을 듣고 "넌 아무래도 사회주의 저승에는 안 어울린다. 하지만 이름이나 들어보자."고 했더니 블라디미르 레닌이라 대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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