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독박 낙타, 핫한 낙타

별 인연도 없는 한국땅에서 낙타가 수난을 겪고 있다. 메르스의 매개체로 지목돼 동물원의 낙타가 격리되고 있다. 낙타가 독박 피박을 쓰고 있다.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고, 낙타유나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황당한 예방법까지 발표해 누리꾼들의 조롱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여튼 이래저래 사막의 낙타 같은 인내심이 필요한 한국사회다.

낙타 패러디에 세상이 빠졌다. 영화 제목에 낙타를 집어넣는 놀이가 시작됐다. '‪#‎영화제목에_낙타를_넣어보자‬'라는 해시 태그를 단 글이 트위터에 잇달아 올라오기도 했다. '님아, 그 낙타를 타지마오', '메르스와의 전쟁: 나쁜 낙타 전성시대', '광염 소낙타'처럼 말이다.

2014년 ‘KBS 파노라마’는 몽골고원 4부작 중 2편 ‘낙타의 노래’를 방송했었다..

고비의 쌍봉낙타는 인간에게 반쯤 길들여져 있다. 새끼는 게르 주변에 두지만, 다 자란 낙타들은 멀리 내보내 마음껏 풀을 뜯게 한다. 척박한 사막에서 인간과 낙타는 함께 있어야 모래 폭풍과 폭염, 영하 40℃를 밑도는 혹한을 견뎌낼 수 있다.

낙타는 오랜 세월, 모든 신체구조가 사막에 적합하게 진화를 거듭해왔다. 지방을 저장하고 있는 두 개의 혹은 낙타로 하여금 극단적인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준 중요한 요소다.

등에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위에는 물을 저장하는 낙타. 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고 물 없이도 몇 주씩이나 끄떡없다. 혈액순환을 통해 체온을 더위와 수분 손실에 따라 올리고 내리며 몇 달 동안 계속 걸을 수도 있는 낙타는 고비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다.

‘봄’ 하면 푸른 풀이 돋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봄을 떠올리지만, 고비의 봄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황사에 잿빛으로 물들 경우가 많다. 사람도, 동물들도 예고 없이 불어 닥치는 모래 바람의 시련을 묵묵히 견딘다.

그 봄에 2년생 낙타 한 마리가 진통을 시작한다. 보통 낙타들의 경우 3년생부터 새끼를 낳기 때문에 이는 무척 드문 경우다. 오랜 산고 끝에 결국 세상으로 나온 새끼는 척박한 모래땅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수 시간이 지난 후 걸음마에 성공한 새끼 낙타, 낙타의 주인이 찾아와 고비의 새 식구가 된 새끼 낙타에게 축복을 내려준다.

낙타는 단봉 낙타와 쌍봉낙타로 구분하는데,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낙타는 쌍봉낙타다. 단봉낙타에 비해 추운 지역에서 살아가는 쌍봉낙타는 털이 훨씬 길며, 몽골에서는 동물의 털 중에 낙타털을 염소털 다음으로 귀하게 여긴다.

유목민들은 따뜻한 봄이 되면 낙타의 털을 대부분 깎아낸다. 낙타의 털이 무척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인데, 털을 내다팔기도 하고, 꼬아서 줄을 만들어 생활에 쓰기도 한다. 또 털을 잘라낸 후엔 낙인을 찍고, 귀에 예쁜 리본을 매주며 자신의 낙타임을 표시한다.

몽골 유목민들은 죽은 말의 꼬리털을 모아 두 개의 현을 잣고, 나무를 깎아 말의 머리와 울림통을 만든다. 이것이 몽골의 유명한 악기, 머링후르, 즉 마두금이다. 말의 꼬리털로 만든 현을 쓰다듬으면 말의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는 마두금 소리가 낙타들을 울린다.

낙타 중에는 난산의 고통을 잊지 못해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는 어미가 있는데, 유목민들은 그럴 때 어미에게 마두금 연주를 들려주어 어미의 심금을 울린다. 이를 후스라고 부르는데, 몽골 사람들은 말이 죽어서 된 마두금이 낙타를 위로하고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마두금 연주를 들은 어미 낙타는 실제로 눈물을 흘리고 새끼가 젖을 먹어도 거부하지 않는다.

몽골은 지구상 최후의 유목 국가로 남은 나라다. 수천 년 전과 똑같이 유목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몽골 고원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유목민들이 이사를 할 때 꼭 필요한 동물이 바로 낙타다. 낙타는 한번에 250Kg이나 되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게르를 해체하고, 그 속에 있던 짐들을 나눠 낙타에 실은 뒤, 남은 낙타에는 사람이 타고 새로운 집터로 이동한다. 이사를 끝낸 유목민들은 겨울 식량 마련을 위해 낙타를 잡는다. 고비의 낙타는 유목민들에게 젖과 고기, 털을 주고, 이동수단이 되기도 한다. 황량한 사막 고비에서 살아가기 위해 유목민들에게 낙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시작하는 아포리즘이다.

여기서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인내의 정신을 가리킨다. 서영은의 소설 <먼 그대>의 노처녀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에 한 마리 낙타를 키운다. 그는 애인인 유부남이 딸을 강제로 뺏어갔을 때 이렇게 말한다. “너도 네 힘으로 네 속에서 낙타를 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란 것을 알게 해 줄 거야.”

작가 김한길(국회의원)의 소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는 재미동포의 꿈과 좌절의 상징으로 낙타를 동원한다. “오아시스가 나타나도 낙타는 열광하지 않아. 물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시고 그리고 또 가는 거야. 뛰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무조건 가는 거야.” 류시화의 시 ‘낙타의 생’도 마찬가지다.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낙 타(駱駝) -- 이 한직 시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 오신다.
회초리를 들고서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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