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 김흥순=채용비리의 암호는 2010년도는 ‘똥돼지’였다. 당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혜 채용 논란이 번진 이후 부정한 방법으로 취업한 유력자 자녀를 똥돼지로 부른다는 인사 담당자들만의 암호가 세간에 오르내렸다.

힘과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받아줬지만 뒤에서는 경멸과 반감이 담긴 단어로 부르며 그들을 조롱했다.

요즘은 금융권을 중심으로 ‘꿀꿀이’라는 단어가 주로 쓰인다 한다. 똥돼지라는 말이 당시 언론을 통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뒤로 은어(隱語)로서의 가치가 사라지자 엇비슷한 용어로 대체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정부에서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챙겨가는 것을 ‘꿀꿀이 여물통(포크배럴·pork barrel)’이라고 부른다는데, 한국에서는 예산은 물론 일자리까지 힘 있는 자들이 돼지처럼 식탐한다.

꿀꿀이 채용비리는 주로 은행, 공공기관 등에 많다. 이곳들을 보면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 있다. 시장경제 체제의 기본 작동 원리인 경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법으로 높게 쳐준 울타리 안에서 독과점의 혜택을 만끽하는 조직들이다. 민간 경제의 작동 시스템과 거리가 멀다 보니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뽑히고 승진해도 해당 조직의 성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되레 이런 곳들은 꿀꿀이를 많이 받아줄수록 윗선에 잘 보일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공정이나 원칙을 내세우면 힘센 분들에게 밉보여 조직에 오히려 해가 되는 게 현실이란 얘기다.

과거엔 ‘꿀꿀이들이 경쟁력이 떨어지니 알아서 도태될 것’이라는 평민들의 자기 위안이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번듯한 기관에서 쌓은 경력을 토대로 경영전문대학원(MBA), 법학전문대학원 등에 진학해 더 높고 단단한 신분의 벽을 쌓는다.

채용비리를 발본색원할 근본 처방 중 하나는 금융권, 공공 부문 등의 적폐 독과점 밥그릇을 깨는 것이다.

치열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토대만 제대로 다져져도 꿀꿀이들이 설 자리는 저절로 사라진다. 여물통을 뒤져 봐야 먹을 게 없다는 걸 깨닫게 해야 하건만 정부는 공공 부문의 몸집을 부풀릴 궁리만 하며 거꾸로 가고 있다.

경쟁의 열외(列外)가 늘어날수록 부정부패가 싹틀 온상은 커지는 법이다. 똥돼지가 꿀꿀이로 달리 불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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