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3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빠르게 바뀌는 달이며, 3월은 초순에 눈보라가 밀어닥치며 시작하지만, 하순에는 온갖 봄나물이 돋아나고, 봄꽃이 피면서 끝난다.

3월의 시작은 경칩이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이즈음이 되면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게 되어 한난(寒暖)이 반복된다.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며 마침내 봄으로 향하게 된다.

이 시기 농촌에서는 개구리의 알이 몸을 보한다고 하여, 논이나 물이 괸 곳을 찾아가 건져 먹는다고 하였다. 흙일을 하면 일년 내내 탈이 없다고 하여 담을 쌓거나,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벽을 바른다고 하였다.

보리싹의 성장상태를 보고 1년의 풍흉(豊凶)을 점치기도 하였으며, 단풍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위병과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도 하였다. 이 무렵 대륙에서 남하하는 한랭전선이 통과하면서 흔히 천둥이 울리기 때문에, 땅속에 있던 개구리·뱀 등이 놀라서 튀어나온다는 말도 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동물들 뿐 만 아니다. 겨울 보리·밀·시금치·우엉등과 같은 식물들도 모두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와 같이 식물들도 겨울잠을 깨는데, 이를 ‘식물기간’이라 한다. 월동에 들어갔던 농작물들도 생육을 개시한다. 이렇듯 겨울 내내 잠을 자던 동·식물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면, 비로소 봄의 소리! 봄의 몸짓으로 알린다.

농가월령가 2월령(춘분령)

“이월은 한창 봄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엿샛날 좀생이는 풍년 흉년을 안다 하며, /스무날 맑고 흐림으로 풍년 흉년, 짐작하니, /반갑다 봄바람이 변함없이 문을 여니, / 말랐던 풀뿌리는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 산비둘기 소리 나니 버드나무 빛이 새로워라.”

『한서(漢書)』에는 열 계(啓)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되었다. 후에 한(漢) 무제(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휘(避諱)하여 놀랠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논일원십이회삼십운(論一元十二會三十運)에는 “동면하던 동물은 음력 정월[寅月]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戌月]에는 동면을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立冬)에 해당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경칩이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시기임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경칩 무렵에 오는 음력 행사로 재미있는 것은 좀생이별 보기다. 음력 2월 6일 저녁 초승달과 함께 뜨는데 맑은 날 육안으로 보면 6~7개의 별로 보인다.

초승달과 좀생이별의 간격을 보면서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는데, 달과 가까이 있으면 흉년, 멀리 있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또한 좀생이의 빛깔이 붉으면 가뭄이 들고, 반대로 투명하면 비가 적당히 내려 풍년이 든다고 했다.

왕실에서는 왕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기도 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하였듯이, 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하여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된다.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이날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또는 도롱뇽) 알을 건져다 먹는다.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다. 특히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한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재를 탄 물그릇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기도 한다. 경칩에는 보리 싹의 성장을 보아 그 해 농사를 예측하기도 한다.

고로쇠나무(단풍나무, 어름넝쿨)를 베어 그 수액(水液)을 마시는데,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전남 구례의 송광사나 선암사 일대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은 유명하다.

보통의 나무들은 절기상 2월의 중기인 춘분(春分)이 되어야 물이 오르지만 남부지방의 나무는 다소 일찍 물이 오르므로, 첫 수액을 통해 한 해의 새 기운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고로쇠 수액은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어 일기(日氣)가 불순하면 좋은 수액이 나오지 않고, 날이 맑아야만 수액이 약효가 있다.

경칩이 지나서는 수액이 잘 나오지 않으며, 나오더라도 그 수액은 약효가 적다. 이처럼 경칩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움츠려 지냈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력이 소생하는 절기이다.

한국에서는 경칩이 ‘연인의 날’이었다.
서양 사람들이 초콜릿으로 달콤한 사랑을 표현했다면 우리 조상들은 천년을 산다는 은행나무의 열매를 서로 입에 넣어 주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서양의 사고가 물질적인데 반하여 동양적 표현방식은 다분히 상징적이고 정신적이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별이 있어 서로 마주 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저 마주 보고만 있어도 사랑이 오가고 결실을 맺으니 은행나무는 순결한 사랑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예부터 경칩 때에는 각기 지방마다 흥미롭고 다채로운 풍속들이 많이 행해졌다. 본격적인 농사일의 시작으로 매우 바쁜 절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해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기 위해 다양한 풍속들이 행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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