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제주소년 오연준군(12)이 부른 ‘고향의 봄’은 한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다. 한국인의 정서가 깊이 배어있는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리설주 여사 등 남북한 고위 관계자들이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오군의 노래를 들었다.

일부는 ‘고향의 봄’을 따라부르기도 했다. 오군의 맑은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고향의 봄’은 한반도에 봄이 왔음을 체감케하는 따뜻한 봄바람 같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친일인명사전>에 ‘고향의 봄’의 작사가 이원수는 친일파다.

'친일인명사전'명단에 보면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현송월이 칭찬했던 무용가 최승희, ‘고향의 봄’ 이원수 등 저명한 문화 예술가 인사들이 눈에 띈다.

이원수는 1942년 조선금융조합 기관지 ‘반도의 빛’에 발표한 시 ‘지원병을 보내며’ 등 친일 색채가 농후한 작품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문학가 동원 이원수가 ‘고향의 봄’을 쓴 것은 보통학교 학생이던 15살 때였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창원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아 동시 ‘고향의 봄’을 썼다.

이 동시는 1926년 방정환이 출간한 잡지 '어린이'에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음악가 홍난파가 동시 ‘고향의 봄’에 곡을 붙여 ‘국민 동요’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홍난파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의원 등으로 활동한 전력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고향의 봄’을 만든 두 사람이 친일명단에 오르면서 이후 이들을 둘러싼 기념비·기념 사업 역시 진통을 겪었다.

2011년에는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도시 대표 문화 행사로 만드려는 창원시와 그의 친일행적을 문제 삼는 시민사회단체가 갈등을 빚었다. 당시 창원시는 ‘고향의 봄 공원’을 조성하고 이원수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 흉상 제막식, 이원수문학상 제정 등에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10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창원시가 친일 문인 한 사람을 끌어들여 시의 가치를 보태야 할 정도로 초라하고 구차한 도시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는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일제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일에 열중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는 “기염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친일작품을 남긴 문제로 발생해 창원시민들의 반목이 일어나고 있다”며 “시 예산을 반납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업회는 “이 선생이 친일행위에 대해 참회하지 못한 일을 기념사업회가 대신해 사과하는 뜻으로 이 선생의 공과에 대한 백서를 만들겠다”고도 밝혔다.

2015년에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앞 ‘광복의 동산’에 세워진 홍난파 기념비 앞에 그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단죄문’이 세워지기도 했다.


한편 이원수와 홍난파의 친일행적이 수록된 이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기까지는 많은 좌초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다.

박태일 경남대 국문과 교수가 낸 책 '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소명출판)을 보면 이원수(1911~1981)의 친일 작품은 소년시 둘과 농민시 하나, 수필 둘 해서 모두 다섯이다.


박 교수는 2015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유치환과 이원수는 식민 시대 민족적 쟁투와는 관계없이 제 한 몸 이득을 꾀하다 살아남았음에도 다른 이가 겪은 고통이나 영광을 가로채 분외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 같은 지역 출신 문인들의 친일 문제를 제기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지만, 왜곡된 문학사 기술을 바로잡기 위해 연구와 논의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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