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을 결정한 명재권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7기)는 그동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핵심 인사들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영장전담 재판부에 합류하자마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자동차는 물론 고영한 박병대 차한성 전 대법관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내줬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의 집을 압수수색하겠다는 검찰의 뜻은 받아주지 않았다.

명 부장판사는 법원에서 이례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10년간 검사 생활을 하다 2009년 판사로 전직했다.

검찰 출신인 데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어 양 전 대법원장 등과 직접적 인연이 없다. 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피의자들의 영장을 잇달아 기각해 여론이 나빠지자 지난해 9월 명 부장판사를 영장전담 재판부에 투입했다.

명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연수원 동기다. 양 전 대법원장보다는 연수원 25기 후배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의 댓글 여론공작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구속영장도 발부했다.

(책)사법부 -한홍구 지음

법을 무기로 대한민국을 지배하다,
군인 떠난 자리 법비들이 차지했다

우리는 흔히 ‘법대로 하자’는 말을 많이 한다.

센 사람이나 목소리 큰 사람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법치주의’는 힘이나 권력이 아닌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판결에서 알 수 있듯. 사법부는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상식이 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법은 사람을 골라가며 작동해왔다.

이런 현실을 알기에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된 것일까?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였던 ‘법’은 어쩌다가 정권의 조력자를 넘어 권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종횡무진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독자들을 일깨웠던 한홍구 교수는 책 ‘사법부’는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사법부의 민낯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1968년 경찰에 연행된 한 요리사가 “공화당은 공산당보다 못하다”며 항의성 발언을 했다. 이 발언으로 공산당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1970년 어느 달동네에서 한 서민이 철거반원에게 “김일성보다 더 나쁜 놈들아”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며 검찰이 기소했지만 무죄가 선고됐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들어도 말조차 안 되는 주장을 근거로 기소를 하고, 판결을 내린 검사와 판사들이 법을 공부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들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슬픔을 감추기 어렵다.

이 책의 ‘기원’은 2004년 10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3년간 ‘국가정보원 과거사위’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저자는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들을 직접 읽으며 풍문으로 듣던 중앙정보부(중정), 안전기획부(안기부)의 재판개입 과정을 문서로 확인한다. 참혹하고 슬펐지만,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보고서를 썼다. 이후 국정원 기밀문서와 보고서 ‘사법편’에 기초해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언론매체에 연재했고, 연재물을 보완해 이 책을 묶어냈다.

기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법부는 ‘피해자’ 자리에 있었다. 사법부에 대한 ‘중정, 안기부의 부당한 압력과 개입 문제’가 주제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법부는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저자는 중정, 안기부가 시국 사건과 관련해 ‘현직 법관에게 고문을 가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점’, ‘현역 법관을 잡아다가 압력을 가한 사례 역시 딱 한 차례(1980년 김재규 사건 재판 당시 신군부의 요구 사항을 거절한 양병호 대법원 판사가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라는 것을 확인하고 당혹스러웠다.

고초가 없음에도 불구, 법관들은 판결로 말해야 할 때 침묵했고, 판결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고문 사실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도 쉽게 압력에 굴복했다.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저자는 “차라리 중정, 안기부가 법관들을 잡아다 협박하고 고문해서 사법부가 저 지경이 되었다면 덜 슬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법관들을 ‘법비’라고 부른다. ‘비적(떼도둑)’의 ‘비(匪)’를 법관에게 붙였다. 책에는 권력자들에게 동조했던 법관들의 실명과 언행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이 책을 통해 사법불신 한국사회를 낱낱이 파헤치며 사법부에 직접 공소장을 던졌다.

이 책은 이승만 정권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사법부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겪은 고통의 순간을 기록한 책이다. 하지만 사법부는 안기부나 중정을 비롯한 정권과의 관계에서 피해자였지만 시민들과의 관계에서는 살해공범자이자 가해자였다. 이런 현실을 한 교수는 일지처럼 낱낱이 정리했다.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을 제안하고 준비하고 있는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관장이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 교수가 이 책의 집필 시작을 마음먹은 건 2004년 10월부터 3년간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 활동을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시 그는 국정원 내부 기밀문서들을 직접 읽으며 그간 풍문으로 오가던 중정-안기부의 재판 개입 과정을 문서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사장시키지 않은 국정원 기밀문서와 보고서에 기초해 한겨레 신문에 관련한 연재를 했고, 책을 준비하는 동안 일부 사건이 재심으로 무죄를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책을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종횡무진하며 날카로운 시선과 현재적 시각으로 지금의 독자들을 일깨웠던 한홍구의 장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안기부의 보고서를 비롯해 재판일지와 판결문, 그리고 한홍구가 직접 당시 재판에 공석했던 판사와 변호사, 피의자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까지 인용되어 있어서 한국현대사의 증언록을 보는 듯하다.

‘법비’라는 말이 있다. 법을 자기 식으로 절대시하고 도구 삼아 비적 행위를 해왔던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한 교수에 의하면 법비는 비적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고 잔인하다.

이 책에선 대한민국 현대사의 수면에 가려졌던 ‘법비’들을 한 명씩 호명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고치거나 추가했던 정권의 지배자들을 비롯해 그에 동조했던 법관들의 실명과 그들의 언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은 ‘법을 이용하고 법을 지배해온’ 대한민국 법비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5.16 군사반란 이후 1963년 12월까지의 군정 기간은 법원이 완전히 군부의 통제하에 있었던 사법부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에는 “사법부의 목을 죄는 여러 가지 독소조항을 심어놓았”고 “국가관이 없는 판사들이”라는 이유로 판사 재임용에서 대거 탈락시키기도 했다.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해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정권은 법관들을 협박하고 좌천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판결이 나도록 서슴지 않았다. “정식재판도 아닌 즉심에서 정권의 뜻을 거슬러 인사조치 된” 박시환 판사도 있었다. 법을 수단 삼아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늘리려는 권력 투쟁이 사법부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과거의 오점들을 나열한 것에만 있지 아니하다. 사법부의 불신은 여전히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의 판결을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노동문제와 관해서 약자에 가혹하고 정치권력에 편들기를 일삼는다는 그를 향해 “브레이크 없는 역주행”을 한다는 가혹한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면서도 한 교수는 오늘의 법관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 교수는 이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을 안기부의 압력 속에서도 양심적 판결을 내리고 변호했던 정의로운 법관들의 이야기로 채웠다. 이러한 분들은 사법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동시에 다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물으며 사법부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사법부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직접 고문은 없었지만 많은 법관들이 소신 판결을 했다가 인사 조치 등으로 탄압을 받았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에 사법부의 목을 죄는 여러 가지 독소조항을 심어놓았고, “국가관이 없는 판사들”이라는 이유로 판사 재임용에서 대거 탈락시키기도 했다. 법관들을 협박하고 좌천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판결이 나도록 만들었다. 이를 고려해 저자도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을 양심을 지키려 한 ‘정의로운 법관’들 이야기에 할애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고통을 피해자의 그것과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 저자는 “사법부는 안기부나 중정을 비롯한 정권과의 관계에서 피해자였지만 시민들과의 관계에서는 살해 공범자이자 가해자였다”고 단언한다.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였던 ‘법’은 피해자에서 정권의 조력자로, 그리고 다시 권력이 된 것이다.

딱딱한 법정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책이지만 술술 읽힐 만큼 흥미롭다. 재판이 열린 시기의 시대상황과 함께 안기부의 보고서, 재판일지와 판결문, 당시 재판에 참석한 판사와 변호사, 피의자 인터뷰 등이 자세하게 실려 현대사 책으로도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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