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청주일보】김흥순 = 양승태가 감옥에서 웃고 있다. -대법 방관 속 ‘사법농단’ 판사 중 30명, 3년 징계시효 지났다

(1)미적대다 3년 ‘훌쩍’지나
(2)작년 징계받은 8명도 ‘솜방망이’
(3)현직 관여자 중 남은 35명도 핵심 사안 다수 시효 지나
(4)어영부영하다 시효 지나가게 만들어
(5)징계시효는 지금도 소멸중
(6)사법적폐 청산은 물건너 갔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울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지난해 검찰 수사로 2015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1심 재판에 법원 윗선이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가 드러났다.

임성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주문에 따라 재판장인 이모 부장판사에게 선고 시 구술할 내용을 미리 보고받고 수정을 지시했다. 그해 12월 선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인이라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무죄 논거가 ‘명예훼손은 인정되지만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로 바뀌었다.

‘청와대가 서운해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기사가 허위임을 얘기해달라’는 주문에 따라 이 부장판사는 ‘대통령을 조롱하면서 기초적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았다’고 가토 전 지국장을 질책하며 3시간 동안 서서 선고를 듣게 했다.

이 사건은 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부당거래로 재판 독립을 훼손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기소로 관련 내용이 공식화된 지난해 11월14일 이후 대법원은 해당 법관들을 징계할 수 있었다.

대법원이 소극적으로 방관하는 새 징계시효(3년)가 지났다.

경향신문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공소장을 전수 분석한 결과 사법농단에 부당 관여한 법관은 83명이었다.

65명(징계 절차를 거친 13명은 포함, 공보관실 운영비 전달에 단순 개입한 법관들은 제외)이 현역 법관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30명은 시효가 지나 징계할 수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징계할 수 있는 35명도 핵심 사안은 이미 시효가 지난 경우가 다수였다. ‘정운호 게이트 비리 판사 은폐’에 연루돼 징계가 가능한 것으로 분류됐지만 ‘가토 사건’의 시효는 지난 임성근 부장판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사법농단 사건과 별개로 2015년 해외 도박 혐의로 약식기소된 프로야구 선수 오승환·임창용씨 재판에 개입하는 월권행위로 지난해 대법원에서 견책처분을 받기도 했다.

어영부영하다 시효 지났다

사법농단은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에 혈안이 된 2015년 정점을 이뤘다. 지난해 서둘렀어야 징계할 수 있던 사안이 많다.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 등으로 수사는 지연됐다.

그사이 일제 강제징용 사건을 지연하고 뒤집으려 하는 데 관여한 법관들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대선 개입 사건, 통합진보당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재판에 개입한 법관들이 면죄부를 받았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재판 청탁을 전달한 법관들, 서기호 전 의원의 행정소송을 신속 종결하도록 관여한 조한창 당시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도 징계를 피했다.

‘가토 사건’처럼 검찰 수사로 실체가 드러난 후 나섰다면 징계가 가능했던 사안도 있다. 2016년 1월 위안부 손해배상 사건의 소 각하 내지 기각 논리를 작성해 보고한 조모 당시 행정처 심의관이 대표 사례다.

심상철 당시 서울고등법원장이 2015년 12월 통진당 의원직 상실에 대한 항소심이 행정처 요구대로 ‘행정6부’에 배당되도록 조작한 혐의도 지난해 12월 초 언론에 보도됐지만 법원은 나서지 않았다.

▲이런데도 경징계?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징계에 회부된 13명 중 8명에 대해 정직·감봉·견책 징계를 의결했다. 처분 수위에 의아한 부분도 발견된다. 검찰 수사로 새롭게 드러난 부분이 징계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으로 2016~2017년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를 작성하고, 2015년 ㄱ부장판사가 정신과 치료 약물을 복용하는 것처럼 속여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한 것으로 조사된 김모 부장판사는 징계에서 불문(잘못이 경미해 죄를 묻지 않음) 통보를 받았다.

문모 부장판사는 사법정책실 심의관으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판하는 언론 기사를 대필하고, 일선 재판부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에 개입하는 근거가 되는 문건을 작성하는 등 다수 혐의에 개입했는데 견책만 받았다. 정직·감봉 징계를 받은 법관들의 부적절한 행적도 공소장에 다수 등장하지만, 대법원이 재징계에 나설지는 알 수 없다.

▲징계시효는 지금도 소멸 중

헌재 내부 정보를 오랜 기간 빼돌려 대법원에 보고한 최모 부장판사, 부산 법조비리 은폐 때 행정처 요구대로 변론을 재개한 김주호 부산고법 부장판사 등에 대해선 시효가 남아 있다. 2016년 3월 박 전 대통령 비선의료진 특허소송 관련 문건을 작성한 박모 당시 재판연구관처럼 시효가 임박한 건도 있다.

대법원은 검찰이 전·현직 법관 중 재판에 넘길 대상을 정한 뒤 관련 내용을 통보하면 징계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탄핵·기소되는 법관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단은 징계뿐이다. 징계 범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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